외국인,취객,그리고 고양이…이들이 지난밤 저지른 범죄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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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통령 선거의 벽보가 붙은 지 5일 만에 경찰에 100건이 넘는 훼손 사례가 접수됐다. 방법도 이유도 제각각이다. “불법인지 몰랐다”며 담벼락에 붙은 벽보를 떼어낸 ‘무지형’부터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며 벽보를 찢은 ‘분노형’까지 다양하다. 법원은 이러한 행위에 대해 통상적으로 벌금형을 선고한다. 공직선거법은 별다른 이유 없이 선거 벽보 등을 훼손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무지형
“디스 이즈 마이홈, 마이홈”
지난 21일 오후 4시 50분, 서울 마포구의 한 단독 주택. 미국 국적의 R(64)씨는 자신의 집 담벼락에 붙은 선거 벽보를 떼어내다 현행범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웃 주민들은 R씨를 말렸지만 ‘우리 집(My home)’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벽보를 떼어냈다. 경찰 진술에서 그는 “우리 집에 벽보를 붙여놔 떼어냈을 뿐이다. 한국에서 벽보를 떼어내면 불법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법적으로 규정은 해놓지 않았지만 통상적으로 자택에 벽보를 붙일 때는 집주인의 동의를 구한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문제가 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분노형
지난 22일 강원도 춘천에서는 50대 남성이 중학교 담벼락에 부착된 선거 벽보를 열쇠로 찢었다. 15명 중 한 후보의 얼굴만 훼손했다. CCTV 분석을 통해 경찰에 붙잡힌 남성은 “나를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며 훼손 이유를 밝혔다. 같은 날 경기도 팽택에서는 여자친구와 말다툼을 벌인 20대 남성이 화풀이로 선거 벽보를 떼어냈다가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묻지마형
경기도 오산에서는 한 남성이 아파트 입구에 부착된 선거 벽보를 라이터로 태워 경찰에 붙잡혔다. A(26)씨는 경찰 진술에서 “별 이유는 없었다. 담배를 피우다가 불을 붙였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경남 창원에서는 허모(30)씨가 아파트 입구에 부착된 선거 벽보 중 특정 후보 사진 만을 우산으로 5차례 찔러 훼손했다. 남성은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우산에 찔려 훼손된 벽보 [사진 마산동부경찰서]

우산에 찔려 훼손된 벽보 [사진 마산동부경찰서]

◇천재지변형
폭우나 강풍 등에 의해 선거 벽보나 현수막이 훼손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지난 21일 전북 부안에서는 바람에 날려 떨어진 벽보를 붙이는 초등학생 2명을 벽보를 훼손하는 것으로 오해해 신고가 접수된 해프닝이 발생했다. 23일 부산 해운대구에서는 순찰 중이던 경찰이 찢겨진 벽보를 발견하고 수사에 나섰으나 범행 주체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로 밝혀지기도 했다.

페쇄회로(CC)TV에 찍힌 고양이의 벽보 훼손 장면 [중앙포토]

페쇄회로(CC)TV에 찍힌 고양이의 벽보 훼손 장면 [중앙포토]

법원은 정당한 이유없이 벽보를 훼손해 기소된 사람들에게 통상적으로 벌금형을 선고해왔다.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늘 싸우는 모습이 기분 나쁘다'며 선거 벽보를 뜯어내 수차례 발로 구긴 30대는 벌금 150만원을, '특정 후보가 마음에 들지않는다'며 후보 사진 위에 불투명 테이프를 붙인 30대는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공명선거 분위기를 저해하는 선거 벽보나 현수막 훼손을 중대범죄로 간주하고 있다"라며 "공보물 훼손 범죄가 발생하면 반드시 추적해 검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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