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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바람 타고 다시 불붙은 ‘고향세’ 도입 찬반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10년 가까이 제자리를 맴돌던 ‘고향세’ 논의가 대선을 앞두고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도·농 지방재정 격차 줄이기 위해 #도시민이 고향·농촌 등 지정 기부 #전북·강원 등 농어촌 지자체 “찬성” #정부·도시는 “세수 감소 우려 반대” #전문가 “납세자 형평성 등 위배돼 #관련법 개정, 사회적 합의 선행돼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고향 사랑 기부제도’를 대선 공약으로 채택했다. 개인이 고향이나 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를 선정해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 기부자에게 세금을 감면해 주는 게 골자다. 기부금을 받은 지자체는 ‘고향 사랑 기부금 계정’을 별도로 개설, 기부심사위원회를 통해 투명하게 관리·운영하도록 했다. 김동열 더문캠 비상경제대책단 부단장은 24일 “자치단체 간 재정 불균형을 해소하고 출향 인사들의 애향심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고향세 도입을 제안했다” 고 말했다. ‘고향세’는 출신지 또는 이전에 거주한 적이 있는 지역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 세액 공제 등을 받는 것을 말한다. 2008년 고향세를 도입한 일본은 기부자에게 답례품으로 지역 특산품을 제공한다.

문 후보의 ‘고향사랑 기부제도’는 개인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면 10만원까지 전액 세금에서 공제하는 내용이다. 나머지 금액은 기부금액의 16.5%를 국세인 소득세와 지방소득세에서 공제한다.

고향세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도시민이 내는 주민세의 10%를 고향으로 돌리는 공약을 한 게 시초다. 이후 2009년과 2011년에 국회에서 고향세법이 발의됐지만 수도권과 도시권 지자체들의 반대로 연거푸 무산됐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도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본인의 고향이나 5년 이상 거주 지역에 내는 ‘향토 발전세’ 신설을 검토했다가 접었다. 주민 대다수가 출향민인 수도권 지자체들이 “지방소득세의 최대 30%까지 줄어들 수 있어 역차별”이라며 반발해서다.

최근에는 전북도와 강원도가 고향세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전북 14개 시·군 의장단협의회와 전국시도의장협의회는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고향기부제 도입을 촉구하는 건의안을 채택해 정치권에 전달했다. 강원연구원도 지난해 2월 일본의 고향세 성공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두 곳 모두 국내 대표적인 농도(農道)이자 재정이 열악한 광역자치단체로 꼽힌다.

지난해 당초 예산 기준으로 전북 지역 평균 재정자립도는 29.6%로 강원(27.1%), 전남(23.7%)과 함께 하위 3곳에 포함된다. 상위 5곳은 서울(84.7%)과 울산(72.3%), 경기(67.4%), 인천(67%), 부산(60.1%) 순이다. 대부분 수도권과 대도시다.

지난해 3월 고향기부제 도입을 주장한 양성빈 전북도의회 의원은 “기존의 고향세는 지방세를 걷어 낙후 지역으로 전달하는 방법이라 수도권 지역의 반발이 심했다”며 “제도를 개선해 기부금을 고향에 내고 연말 정산 때 소득세에서 공제받도록 하는 내용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전북 완주·진안·무주·장수)과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이 각각 ‘기부금품법’ 개정안과 ‘농어촌 발전을 위한 공동 모금 및 배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해 고향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고향세 찬반 여론은 여전히 팽팽하다. 찬성 측은 지방 및 농어촌 지역의 재정이 탄탄해지고 지역 간 재정 불균형을 완화하는 순기능을 강조한다. 정상혁 충북 보은군수는 “재정자립도가 10%에 불과해 자체 수입으로 도로를 닦거나 다리를 놓는 등 기본적인 현안 해결조차 어렵다”며 “고향세가 도입되면 지역 인재 양성과 농촌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염명배 충남대 교수(경제학과)는 “고향세는 거주지를 토대로 세금을 부과하는 조세 원칙과 납세자 형평성 원칙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며 “관련법 개정과 함께 수도권과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의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보은·춘천=김준희·최종권·박진호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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