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박스피가 무슨 뜻인가요

중앙일보

입력 2017.04.2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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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Q. 경제 기사를 보면 ‘박스피가 뚫리려다 말았다’ ‘박스피에서 탈출 못 하고 있다’란 표현이 자주 나와요. 박스피란 말의 정확한 뜻이 궁금합니다.

‘주식회사 한국’ 지표인 코스피 #6년째 1700~2200 왔다갔다 #24일 코스피 2173.74 기록 #경기 살아나는 신호 곳곳서 감지 #대선정국, 북한 핵실험 등 변수 많아 #더 오르기 어렵다 비관적 전망도

상자에 갇힌 듯 답답한 주가 흐름을 말하죠"

A. 틴틴 여러분 박스란 말 잘 아시죠. 영어로 하면 박스(Box), 한국어로 하면 상자죠. 친구에게 줄 선물을 포장할 때 쓰는 상자, 집으로 오는 ‘택배 상자’를 언급할 때 그 상자 맞습니다. 그럼 코스피란 말은 아시나요. 좀 어렵죠. 코스피는 종합주가지수(Korea Composite Stock Price Index)의 영어 앞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입니다. 코스피는 한국을 대표하는 주가지수입니다. 국내 기업의 가치가 얼마가 오르고 내렸는지 종합해서 보여주는 지수죠. 이 코스피의 마지막 글자 ‘피’와 상자를 뜻하는 영어 박스를 합쳐 만든 말이 박스피입니다.

상자 안에 공을 넣은 다음 흔들면 어떻게 되나요. 안에서 퉁탕거리며 튈 뿐 상자의 크기 이상 공이 움직이지 못하겠죠. 틴틴 여러분도 잘 알겠지만, 코스피는 손에 잡히는 물건이 아니에요. 하루하루 달라지는 한국 기업의 가치에 따라 달라지는 숫자죠. 코스피의 변화를 선으로 이어봤더니 보이지 않는 상자 안에 갇혀있는 것처럼 그려진다고 해서 박스피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자료:한국은행·한국거래소

자료:한국은행·한국거래소

여러분이 잘 모르는 단어인 건 당연해요.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말이기 때문이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같은 공식 사전에도 올라있지 않는 용어랍니다. 중앙일보 기사에 박스피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게 불과 2년 전이었습니다. <중앙일보 2015년 2월 27일 자 E7면 ‘박스피는 그만…코스피 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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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최근 들어 자리잡은 현상이란 뜻이죠. 한국 주식시장에서 박스피 현상이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했는지에 대한 정의는 없어요. 대신 증권업계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얘기는 있죠. 김형렬 교보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코스피가 1700에서 2200까지 500포인트 범주 안에서 움직이는 걸 보통 박스피라고 봅니다.”

박스피의 기원을 알아보려면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봐야 합니다. 2008년 9월 미국 4위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작입니다.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집을 사라며 대출을 해줬던 게 화근이었죠. 세계 1위의 경제대국 미국이 휘청이자 한국 경제도 피해를 입습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위험하게 출렁이자 국내 기업에 투자했던 사람과 기관이 돈을 앞다퉈 빼내기 시작했습니다. 코스피도 당연히 추락했죠. 2009년과 2010년에 접어들어서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2009년 한해 동안 코스피는 1000대에서 1600대로 빠르게 상승합니다. 2010년도 마찬가지였죠. 1년 사이 1600대에서 2000대로 올라섭니다.

자료:한국은행·한국거래소

자료:한국은행·한국거래소

그런데 2010년 이후 예기치 못한 현상이 국내 주식시장에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코스피가 2200대 위를 뚫고 나가지 못했던 거죠. 2011년 5월 2일 코스피는 2228.96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합니다. 이 기록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코스피는 아래로는 1700대, 위로는 2200대 사이에서 오르내리기만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코스피는 6년 넘게 상자 안에 갇혀 퉁탕거리기만 하고 있을 뿐이죠. 3~4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선 일시적 현상으로 봤습니다. 이러다가 경기가 좋아지면 코스피 2200대 정도는 너끈히 뛰어넘을 것이란 희망이 있었죠. 하지만 5년, 6년이 넘어가면서 기대는 좌절로 바뀌게 되죠. 증권업계에서 박스권·박스피 같은 말이 생겨나고 번지기 시작한 때도 이즈음입니다.

원인을 두고는 여러 해석이 나옵니다. 코스피는 한국을 대표하는 주가지수입니다. ‘주식회사 한국’의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죠.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9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7%로 고꾸라집니다. 2009년 한 해 동안 한국의 경제 규모가 0.7%밖에 늘어나지 않았단 의미입니다. 기업도, 가계도 돈을 벌지 못해서 다들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10년 들어서야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했죠. 경제성장률도 그해 6.5%로 튀어오릅니다. 그러나 2011년부터 한국 경제는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예전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게 된거죠.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3%대에서 머물고 있어요. 한국은행은 올해도 한국 경제가 2.6%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라 예상했어요. 2015년 이후 3년 연속으로 2%대 낮은 성장률이 이어지리란 거죠.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 갇힌 시기와 박스피가 출현한 때가 딱 맞물립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보통 주가지수는 기업의 현재 가치보다는 미래 가치에 맞춰 움직입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 걸음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박스피란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어요.

자료:한국은행·한국거래소

자료:한국은행·한국거래소

더 비관적인 해석도 있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 규모를 나타나는 지표 중에 국내총생산(GDP)이라고 있어요.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1637조4208억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코스피 시가총액(1308조4404억원)과 코스닥 시가총액(201조5234억)을 합하면 1509조9638억원에 이릅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과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의 차이는 130조원 남짓에 불과합니다.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이 이미 한국 경제 규모와 맞먹는 수준으로 커져있단 의미죠. 다른 나라에서도 국내총생산과 주식시장 규모는 엇비슷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코스피가 이미 한국 경제 수준을 반영할 만큼 충분히 상승해 있어 더 오르기 어렵다는 비관 섞인 전망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건 없습니다. 주식시장에도 해당하는 말이겠지요. 요즘 들어 틴틴 여러분이 느낄 만큼 박스피란 용어가 기사 곳곳에 많이 출몰하고 있는 이유가 있죠. 박스피 탈출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어요. 코스피는 여전히 상자에 갇힌 모양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이전과는 양상이 다릅니다. 2000과 2200 사이에서 오르내리고 있어요. 24일 코스피는 2173.74를 기록했습니다. 2200에 바짝 다가섰죠. 역대 최고 기록(2228.96)까지 50포인트 남짓 남았습니다. 수출을 비롯해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걸림돌도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흔들리고 있는 정치판,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추가 핵 실험 가능성, 미국과 중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같은 변수도 많아요. 하지만 불안보다는 희망이 더 큽니다. 올해가 한국 주식시장의 박스피 탈출 원년이 되길, 틴틴 여러분도 함께 응원해보자구요.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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