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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울린 포체티노, 넌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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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서 발간한 '2002 FIFA 월드컵 공식가이드'에 소개된 포체티노.

중앙일보에서 발간한 '2002 FIFA 월드컵 공식가이드'에 소개된 포체티노.

지난 3월 13일 FA컵 8강에서 만난 밀월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터뜨린 손흥민을 칭찬한 포체티노. [사진 토트넘 홈페이지]

지난 3월 13일 FA컵 8강에서 만난 밀월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터뜨린 손흥민을 칭찬한 포체티노. [사진 토트넘 홈페이지]

손흥민(25ㆍ토트넘 홋스퍼)이 ‘윙백’으로 변신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팀 내에서 가장 뜨거운 득점포를 뿜어내고 있던 선수를 ‘수비용’으로 기용한 감독은 영국에서 비판을, 한국에서 비난을 받았다. 그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 마우리시오 포체티노(45)다.

2002 월드컵 때 아르헨 수비수 #잉글랜드 오언 ‘다이빙’에 PK 허용 # #포체티노, 토트넘-첼시 FA컵 4강때 #손흥민 낯선 윙백 맡겨 수비에 치중 # #슈팅 0개, 공격 막다 PK도 내줘 #팀도 지고 손흥민도 망가져 씁쓸

지난 23일 토트넘과 첼시는 잉글랜드 축구협회(FA) 컵 준결승에서 만났다. FA컵은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최강자를 가리는 최고 권위 대회다. 이번 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첼시(승점 75)는 1위를 달리고 있다. 그 뒤를 승점 71점의 토트넘이 바짝 뒤쫓고 있다. 리그 1,2위가 FA컵 결승 진출을 다투는 빅 매치였다.
이 경기에 손흥민은 왼쪽 윙백으로 선발 출전했다. 윙백은 3명의 중앙수비수(스리백) 바로 위 좌우 측면에 세우는 선수를 말한다. 공격 때는 상대 진영 깊숙이 파고들어야 하고, 수비 때는 자기 진영 측면을 커버해야 한다. 전형적인 멀티 포지션이고, 뛰어난 스피드와 강인한 체력이 필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한국축구의 대표적 윙백으로는 이영표를 꼽을 수 있다. 20대 초반의 박지성이 잠시 윙백을 맡기도 했다.

손흥민은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에서 2선 공격수 또는 날개 공격수로 뛴다. 축구 인생에서 거의 맡아본 적이 없는 보직을 손흥민이 첼시전에서 받아든 것이다. 포체티노 감독은 왜 손흥민을 윙백에 세웠을까. 1차적으로 첼시의 오른쪽 윙백인 빅터 모제스의 예봉을 꺾기 위함이었다. 공격력이 뛰어난 모제스에 손흥민을 맞세움으로써 그의 공격 의지를 무디게 하려는 의도였다. ‘첼시의 3(수비)-4(미드필더)-3(공격) 포메이션에 같은 3-4-3으로 맞불을 놓는다. 최근 4경기 연속골(5골)과 FA컵 득점 1위(6골) 손흥민의 한방도 기대한다’는 전형적인 ‘두 길 보기’였다. 해리 케인, 델레 알리 같은 뛰어난 공격수들을 전방에 풀어 놓고 손흥민까지 (제 포지션이 아니지만) 놀리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포체티노는 ‘장고 끝 악수’를 둔 셈이 됐다. 손흥민은 낯선 포지션에서 길을 잃었다. 슈팅은 하나도 하지 못했고, 모제스의 돌파에 어설픈 태클을 하다가 페널티킥도 내줬다.(물론 모제스의 ‘다이빙’에 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2-2로 맞선 후반 23분 손흥민이 교체 아웃된 이후 토트넘은 2골을 더 허용해 2-4로 결승 티켓을 첼시에 내줬다. 전술 변화가 빠르고 디테일에 강한 포체티노 감독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오히려 당한 경기였다.

손흥민의 골 소식을 알리는 토트넘 페이스북. [사진 토트넘 페이스북]

손흥민의 골 소식을 알리는 토트넘 페이스북. [사진 토트넘 페이스북]

2002 월드컵 당시 중앙일보가 출간한 ‘월드컵 공식 가이드’에 포체티노는 장발에 헤어밴드를 한 꽃미남 선수로 등장한다. 지금 모습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그에게 2002 월드컵은 악몽의 무대였다. 아르헨티나는 나이지리아ㆍ잉글랜드ㆍ스웨덴과 ‘죽음의 F조’에 속했다. 6월 7일 일본 삿포로돔에서 열린 숙적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포체티노는 마이클 오언을 막다 페널티킥을 내줬다. 하지만 TV 화면으로 보면 두 선수는 전혀 신체접촉을 하지 않았다. 오언의 절묘한 다이빙(당시 용어로는 헐리우드 액션)에 ‘외계인 주심’으로 추앙받던 콜리나 심판이 속은 것이다. 나는 그 경기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에 0-1로 진 게 빌미가 돼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스웨덴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아르헨티나는 1-1로 비겼다. 그날 미야기 스타디움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아르헨 공격수 바티스투타가 비를 맞으며 눈물을 펑펑 흘리던 장면을 기억한다. 포체티노도 울었을 것이다. 모제스에게 억울한 페널티킥을 내주고 교체 아웃돼 팀의 참패를 지켜봐야 했던 손흥민도 속울음을 삼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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