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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안철수의 버디무비, 홍준표는 안티히어로?

중앙일보

입력

5ㆍ9 대선은 예상 밖 시나리오의 연속이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으로 비롯된 조기 대선 자체가 초유의 사건이었다. 기존 보혁대결 구도가 흔들리고 지역주의가 무너진 것도 일찍이 없었다. 혹시 막판 또 다른 합종연횡? 이제 2주 남은 대선, 영화로 패러디해 보자.

1969년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마지막 장면. 왼쪽이 폴 뉴먼, 오른쪽이 로버트 레드포드.[중앙포토]

1969년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마지막 장면. 왼쪽이 폴 뉴먼, 오른쪽이 로버트 레드포드.[중앙포토]

1.문재인 안철수의 버디 무비
전형적인 남녀 주인공이 아닌, 남남커플이 타이틀롤을 맡는 버디 무비(buddy movieㆍ두 명의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1960년대 후반 ‘이지 라이더’ ‘내일을 향해 쏴라’등 뉴아메리칸시네마가 등장하면서다. 국내에선 93년 ‘투캅스’가 물꼬를 텄다. 현재까지 19대 대선 레이스는 문재인과 안철수, 두 남성 후보가 판을 주도하고 있다.

16일 세월호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문재인 안철수 후보. [중앙포토]

16일 세월호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문재인 안철수 후보. [중앙포토]

둘은 5년전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처음 조우했고, 마찰 끝에 안철수 후보가 중도 사퇴했다. 이후 합당(2014년)과 탈당(2015년) 등을 거치며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반기문·황교안·안희정 등 보수·중도 후보가 하나둘 사라지며 자칫 문재인의 독무대로 싱겁게 끝날 듯 보였던 레이스는 숙명의 라이벌 안철수가 다시 부활하며 최후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5년 만에 리턴매치를 하는 두 사람, 과연 마지막 장면엔 누가 살아남아 있을까.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왼쪽)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오른쪽)가 23일 열린 TV토론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왼쪽)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오른쪽)가 23일 열린 TV토론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2.신스틸러 유승민 심상정
여론조사 지지율은 5% 안팎에 불과한 약체지만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TV토론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며 시선강탈에 성공했다. 주연보다 더 주목받는 조연인, 이른바 '신스틸러'(scene stealer)였다. 19일에 유 후보는 주적 논란을 이끌어 보수주자로서 안보이슈 부각에 성공했고, 심 후보는 대북송금 설전이 벌어지자 “언제까지 우려먹느냐”며 좌중을 압도했다. 23일에도 둘은 날카로운 질문으로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등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TV토론이 끝나고 “누가 가장 잘 했는가”라는 전문가 설문의 1,2위는 두 후보의 몫이었다.

마블시리즈의 안티히어로 '데드풀'.

마블시리즈의 안티히어로 '데드풀'.

3. 안티히어로 홍준표
매번 주인공이 엄숙한 영웅적 모습으로만 묘사되자 최근엔 이에 대한 반발로 악동 같은 주인공도 등장하고 있다. 마블시리즈의 안티히어로(anti-hero 도덕적으로 나빠 전통적인 영웅답지 않은 주인공) ‘데드풀’이 대표적 예.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중앙포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중앙포토]

이번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안티히어로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중이다. “노무현은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할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설거지는 하늘이 정한 일”이라는 말로 주변을 어리둥절케 하더니 급기야 돼지흥분제 사건까지 들통나며 여성의 공분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일각에선 “안티히어로는 무슨… 그냥 악역이다"란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4.박지원의 스포일러
올 대선 레이스에서 여론조사는 참고자료가 아닌 바로미터였다. 지지율 등락에 따라 중도포기와 급부상 등이 잇따르며 대선판 자체를 여론조사가 결정하곤 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떳다방’ 업체부터 질문방식과 유·무선비율, 가상의 양자대결 등을 두고 논란이 커져 법정다툼도 적지 않다.

4월2일 오후에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자신의 트위터에 미공개 양자대결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현재 이 글은 삭제된 상태다.

4월2일 오후에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자신의 트위터에 미공개 양자대결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현재 이 글은 삭제된 상태다.

이 와중에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지난 2일 미공개된 여론조사 결과 수치를 SNS에 공개하며 “안 후보가 문 후보에게 역전했다”고 게재했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2000만원 과태료를 물게 됐다. 스포일러(spoiler 줄거리 등을 미리 알려 영화 보는 재미를 훼방하는 행위) 치곤 꽤 비싼 비용을 지불한 셈.

문재인·안철수후보17일 동선

문재인·안철수후보17일 동선

5.'동선의 정치학' 시퀀스
어디에서 처음 유세를 하고 그 다음 어디로 향했는지, 즉 후보의 시퀀스(sequence, 영상 단락 구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과거엔 깃발만 꽂으면 여당은 대구ㆍ경북(TK)을, 야당은 호남을 독식했기에 어디서 유세를 했는지 별다른 변별력이 없었다. 하지만 지역맹주가 사라진 이번 대선은 후보의 동선이 곧 특정 지역에 대한 중시도와 직결되는 ‘동선의 정치학’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17일 공석 선거운동 첫날 문재인 후보는 대구로 동진(東進)을 하고, 안철수 후보는 호남으로 서진(西進)을 했다. 상대가 우세를 선점한 진지를 공략하는 ‘확장’ 전법을 구사한 것이다

서스펜스의 대가 앨프리드 히치콕.

서스펜스의 대가 앨프리드 히치콕.

6.반기문의 맥거핀 효과
맥거핀(macguffin)이란 서스펜스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고안한 극적 장치다. 초반부에 특정 장면을 클로즈업하거나 대사 등을 툭 던져 복선이 깔려있는 듯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지만 막상 별 의미없는 미끼를 일컫는 용어다.

8일 하버드대 초빙교수로 활동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8일 하버드대 초빙교수로 활동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올 초만 해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보수의 적자로 부상했다. 새누리당에서 뛰쳐나온 바른정당은 사실상 반 전 총장을 대선후보 0순위로 옹립하려 했고, 1월 귀국한 반 전 총장은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라며 의욕을 불태했다. 하지만 지지율 정체 및 각종 구설에 휘말리며 반 전 총장은 귀국 3주만에 중도 포기했고, 보수 지지층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신세로 전락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경제분야 공통공약.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경제분야 공통공약.

7.클리셰(cliche) 공약
외고ㆍ자사고의 축소 혹은 폐지, 검ㆍ경 수사권 조정, 중소기업부 신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누구의 공약일까. 지지율 1,2위의 문재인·안철수의 공통 공약이다. 공약만 봐선 누가 향후 국정운영을 더 잘 할지 판별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어디서 본 듯한, 판에 박힌 공약의 수렴 현상은 초유의 야야(野野) 대결인 탓에 정책 자체가 엇비슷하기 때문일 터. 일각에선 “조기 대선으로 숙성시킨 차별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회고록 논란에 해명하고 있는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중앙포토]

회고록 논란에 해명하고 있는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중앙포토]

8.송민순 회고록은 시퀄?
문재인 후보는 23일 TV토론에서 “송민순 회고록은 제2의 NLL(북방한계선)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송민순 회고록의 진위공방을 2012년 NLL 논란의 시퀄(sequel, 영화의 속편)로 규정한 셈이다.
‘NLL 논란’은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2년 10월 정문헌 전 새누리당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며 불거졌다.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는 “사실이라면 책임질 것”이라고 배수진을 쳤지만 안보이슈가 부각되며 보수층은 결집했고, 이후 ‘사초 실종’논란까지 이어졌다.
한편 “제2의 NLL 사건”이라는 문 후보 주장에 대해 정우택 자유한국당 중앙선대위원장은 24일 “명백한 사실왜곡”이라고 반박했다.

1999년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식스센스'

1999년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식스센스'

9.식스센스급 반전?
3월 9일 탄핵 심판 이후 두 달 만에 치러지는 ‘쇼트트랙 대선’이었지만 반전은 적지 않았다. 황교안 총리의 불출마, 안희정 충남지사의 경선 패배 등으로 구도 자체가 흔들렸고, 보수의 선택지는 야권에서 분화된 안철수 후보에게 귀결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는 문재인 대세론의 부활 양상이다. 이 흐름은 끝까지 갈까. 보수단일화? 대형폭로? 식스센스(the sixth sense)급 반전카드를 누군가는 또 쥐고 있을까.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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