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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자의 미모맛집]⑮ "여태 미더덕 똥만 먹은 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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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남 창원 고현마을은 미더덕 수확이 한창이다. 제철 미더덕은 주황빛 속살을 회로 즐긴다. 미더덕 회는 멍게보다 맛과 향이 은은하다.

지금 경남 창원 고현마을은 미더덕 수확이 한창이다. 제철 미더덕은 주황빛 속살을 회로 즐긴다. 미더덕 회는 멍게보다 맛과 향이 은은하다.

당신은 미더덕을 먹은 적이 없다. 된장찌개, 아귀찜에 숱하게 들어가는 게 미더덕 아니었냐는 반문을 아무리 해봐도 소용없다. 그렇다. 당신은 미더덕이 아니라 미더덕의 사촌, 오만둥이만 먹어 왔다. 우리가 흔히 미더덕이라고 부르고 있는, 손톱만하고 울퉁불퉁한 해산물, 그건 바로 오만둥이다.
진짜 미더덕은 우선 크기부터 범상치 않다. 어른 엄지만큼 두껍고 검지만큼 길다. 겉 껍질은 해삼과 닮았다. 미끈미끈한 껍질 안에 멍게처럼 주황빛 속살을 품고 있다. 우리가 미더덕을 구경하지 못했던 건 오만둥이보다 미더덕 몸값이 세 배 정도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더덕이 서울로 올라오기도 전에 갯마을에서 소진될 정도로 아는 사람은 알아서 찾아 먹는 귀한 식재료이기도 해서다. 이따금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 소량 입고되기도 한다지만, 진짜 미더덕을 맛보고 싶다면 남해바다로 찾아가야 한다. 육지보다 한발 늦게 봄기운이 도는 이맘때가 바로 미더덕 제철이다.

미더덕은 그물에 열매처럼 매달린다. 껍질을 까기 전(왼쪽) 미더덕과 껍질을 벗긴 미더덕(가운데) 모습. 오른쪽은 육지 사람이 흔히 미더덕으로 알고 먹는 오만둥이다.

미더덕은 그물에 열매처럼 매달린다. 껍질을 까기 전(왼쪽) 미더덕과 껍질을 벗긴 미더덕(가운데) 모습. 오른쪽은 육지 사람이 흔히 미더덕으로 알고 먹는 오만둥이다.

국내 미더덕 성지는 사실 딱 한곳이다. 바로 경남 창원의 고현마을이다. 올망졸망 작은 섬이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어촌에서 국내 미더덕의 80%가 난다. 그래서 다들 고현마을을 ‘미더덕마을’이라 부른다. 마을 주민의 90%가 미더덕 양식업에 종사한다.
미더덕은 양식이지만 자연산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고현마을 앞바다에 그물을 걸어놓고 기다리면 봄철마다 그물에 미더덕이 주렁주렁 달린다. 사료를 주는 것도 아니고 약을 치지도 않는다. 그저 바다가 미더덕을 기를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마을 주민들은 “궁도·송도·양도 같은 앞바다 섬이 파도를 막아주는 덕분에 고현마을 바다는 큰 파도 없이 연중 잔잔하다. 따뜻하고 잔잔한 바다가 미더덕이 자라기에 좋은 조건이라는 것만 알 수 있다”고 추측할 뿐이다.

미더덕은 일일이 사람이 손으로 껍질을 까야 한다. 노동력이 투입되기 때문에 오만둥이보다 가격이 곱절은 비싸다.

미더덕은 일일이 사람이 손으로 껍질을 까야 한다. 노동력이 투입되기 때문에 오만둥이보다 가격이 곱절은 비싸다.

고현마을의 어촌계장 김형수(57)씨가 운영하는 고현체험마을식당(055-271-5839)은 갓 잡은 미더덕으로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김 계장이 미더덕을 수확하고 아내 이미자(55) 씨가 요리를 한다. 미더덕을 깨물다 뜨거운 물에 입천장을 홀랑 덴 기억밖에 없다는 말에 이씨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여태 미더덕 똥만 먹은 게지. 미더덕은 살을 먹어야 해요. ”
고현마을에서 최고로 치는 미더덕 요리는 미더덕을 생으로 먹는 미더덕회(1㎏ 2만원)다. 네모난 칼로 미더덕 껍질을 벗겨낸 후, 탱글탱글한 미더덕 배를 갈라 바닷물과 개흙을 턴다. 민물에 살랑살랑 씻어 먹으면 그게 바로 미더덕 회다. 미더덕을 손질할 때 끝부분의 껍질을 남겨 씹는 맛을 더하는 게 포인트다. 오도독오도독 미더덕 회를 씹으면 입안에서 달곰한 향이 퍼진다. 멍게 살과 색과 식감이 비슷하지만 짠맛이 덜하고 은은한 게 특징이다. 봄 한철 즐길 수 있는 강렬한 별미일 따름이다.

고현체험마을식당에선 미더덕비빔밥(맨 위 왼쪽)과 부침개,오만둥이 장아찌 등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고현체험마을식당에선 미더덕비빔밥(맨 위 왼쪽)과 부침개,오만둥이 장아찌 등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고현체험마을식당에서는 미더덕 회 말고도 미더덕으로 만들 수 있는 온갖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미더덕 회를 초장에 버무린 미더덕 무침(1㎏ 2만원)은 기가 막힌 술안주고, 미더덕 속살만 모아 뜨거운 밥에 올린 미더덕 비빔밥(1만원)은 쉴 새 없이 숟가락질 하게 만드는 마성의 음식이다. 미더덕살을 숙성해 만든 미더덕 젓갈은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미더덕 손질은 껍질을 조금 남겨놓는 게 포인트다. 먹을 때 씹는 맛을 더하기 위해서다.

미더덕 손질은 껍질을 조금 남겨놓는 게 포인트다. 먹을 때 씹는 맛을 더하기 위해서다.

글=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사진=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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