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이 ‘고시(考試)’를 준비하는 곳이 아닌 지는 오래됐다. 일부 젊은이는 이곳에 잠시 몸을 뉘인 채 ‘더 나은 꿈’을 꾼다. 또 다른 이들에게 고시원은 더 이상 갈 곳 없어 마지막으로 숨어든 공간이다.”
무명의 사진작가 심규동(29)씨의 말이다. 대학에서 사진을 배우지도 않았고, 이렇다할 전시회 한 번 연 적이 없는 심씨지만, 그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다. 전시비용 600여 만원도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두 충당했다. 그가 고시원의 군상들을 찍은 사진이 사람들의 공감 속에 회자되면서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전국엔 1만1784곳(2015년 기준)의 고시원이 있다. 보증금이 거의 없고, 월세가 싸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집’이다. 규격은 획일화돼있다. 5.0㎡(1.5평) 안팎인 직사각형 모양의 방에 덩그렇게 놓인 침대, 짐 몇 개를 둘 수 있는 공간 정도다.
그런데 그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저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등 30여 권의 책에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온몸에 화려한 문신을 새긴 채 누워 얼굴을 오이로 마사지한다.
1999년 1차 연평해전에서 입은 상처의 후유증으로 평생 고름을 빼내야 하는 이도 고시원에 산다. 이런 사진들에 사람들이 호응한 이유는 뭘까.
“열악한 공간이지만, 결국 이 공간이 다양한 사람의 삶을 떠받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심씨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강원도 강릉에서 지내는 심씨를 21일 만났다. 내달 8일부터 5일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고시텔’이란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 예정인 그는 최근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왜 고시원 사진을 찍으려 마음먹었나.
“나부터 고시원에 꽤 살았다. 기간을 다 합치면 4년쯤 된다. 옆방에는 10년째 고시원에 사는 아저씨, 멀쩡하게 취업한 회사원들이 함께 지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완전한 주거공간으로 자리 잡은 고시원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는데.
“강릉에서 간호대학에 들어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싶어서 대학 입학 직후부터 휴학하고 서울에 올라와 아르바이트하며 사진을 공부했다.”
-사진 속 사람들은 어디서 만난 누구인가. 사진 찍히는 걸 달가워하던가.
“서울 신림동의 ‘S고시텔’에서 2015년 11월부터 10개월간 살았다. 그때 찍은 이웃들이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거기 살던 30여 명 대부분이 거절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 포함해 7명이 전부다. 고시원에 사는 게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쟎나. 처음엔 복도랑 현관, 옥상만 찍다가 6개월쯤 지나면서 친해진 형님과 아저씨들에게 부탁했다. 고시원 사람들은 혼자 지낸 기간이 길어 외로움도 잘 탄다. 중장년층 중에서는 원룸을 구할 돈이 있어도 외로워서 고시원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다. 서로 방문 열고 소주 한잔 나누는 게 일상이다.”
-사진을 찍는 것과 공개적으로 전시회를 여는 건 별개의 문제 아닌가.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전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내가 이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고민이 많았다. 그런데도 사진전을 여는 건, 여기에 사는 우리도 한번은 주인공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숨길 모습도 아니고. 이를 통해 개선되는 점이 있다면 더 좋다.”
-공간이 좁은데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겠다.
“천장에 카메라를 메달고 타이머를 설정한 후 나는 밖으로 나왔다. 내가 없으니 형님들이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현실을 알리는 이런 사진작업을 계속 할 생각인가.
“계속 이런 작업을 하고 싶다. 아름다움을 찍은 사진도 훌륭하지만 나에겐 사진 기술을 이용해 현실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게 맞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