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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역사 현장 눈물마저 얼어붙는 슬픔과 아픔으로 다가왔다"

중앙일보

입력

시조집 『겨울 발해』를 낸 시조시인 권갑하씨.

시조집 『겨울 발해』를 낸 시조시인 권갑하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했다는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는 발언은 충격적이다. 실제로 그런 뜻의 발언을 했는지, 정확한 워딩이 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에 대한 중국 최상층부의 시각이 어떤 것인지 단초를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역사와 문화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이 분개할 정도다.

권갑하씨 옛 발해 영토 돌아본 시조집 『겨울 발해』 출간 #만주 등지 답사하며 느낀 감흥, 단아하고 절절하게 풀어내

 영토든 문화든 '역사적 점유권'에 관한한 우리도 할 말이 꽤 있다. 고구려와 발해, 그보다 훨씬 먼 기원 전 8000년경의 '홍산(紅山)문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인의 북방 '소유' 역사다. 시기적으로 강역(彊域)을 달리 하지만 수백 년간 내몽고 자치주, 광활한 만주, 간도, 연변 등을 사실상 우리 땅으로 삼았다는 역사의 기록과 비공식 역사 주장 말이다.

  이런 시각을 바탕에 깐 시조집이 최근 출간됐다. 중견 시조 시인 권갑하(59)씨가 낸 『겨울 발해』(알토란북스)다. 시조집 앞머리 '시인의 말'에서 권씨는 격한 감정을 토해낸다.

 "잃어버린 땅, 발해!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연해주까지 광활한 영토를 호령했던 '해동성국(海東盛國)'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 땅에서 만나는 발해 역사 현장은 죄다 중국의 관점으로 지워지거나 왜곡된 것이니 이를 어찌 할 것인가. (…)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만주벌판의 혹한 속에서 만난 발해의 역사 현장은 눈물마저도 얼어붙는 냉혹한 슬픔과 절절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시조집에 실린 작품들은 철저하게 이런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해동성국을 꿈꾸며'는 고토(古土) 회복의 내용과 의미를 설명문처럼 친절하게 풀이한다.
 "발해만으로 흘러드는 '요하'를 품에 안고/ 서로는 거란, 동으론 푸른 동해에 닿았네/ 북쪽은 아무르강역, 남으론 대동강에 이르는// 적석총, 빗살무늬토기, 석성과 비파형동검/ '황화'보다 천여년 앞선 요하 문명이었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인들이 일구어 온// 우리가 반도를 넘어 요하를 다시 품을 때/ 일찍이 복희씨가 세운 고조선 밝달민족/ 남으론 독도와 한라, 북으론 황하를 안으리니// 발해는 고구려보다 더 강성했던 '해동성국'/ '동이' 한 뿌리의 부족들을 대통합한/ 한민족 북방 통일국, 동아시아를 호령했네// 한반도는 대륙 역사를 압축한 상징 코드/ '구고려河'요 '압록水'인 요하를 응시하면/ 허물고 넘어야 할 경계가 오롯하게 떠오른다".

 '발해 가는 길' 단시조 연작은 단아하고 절절하게 옛 발해 땅의 문물과 풍경을 그린다.
 "드넓은 난바다에 이르고 싶었으나// 하얀 포말로 부서진 크고도 넓은 나라// 만주벌 흩어진 바람// 깃발인양 흐느낀다".('발해 가는 길 1-만주벌')
 "떠나보내고서야// 자취 다 지우고서야// 비로소 아득한 시간 가슴으로 안는 나라// 머금은 사무침이야// 다시 벙글 꽃 아니랴".('발해 가는 길 4-자취')

 시인 고운기씨는 시조집 뒷표지 글에서 "발해 땅이 지금 우리 영토이고 아니고는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영토란 시대마다 실효 지배한 쪽의 경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쉽기로는 오랜 세월 우리 영토 밖에 두었다고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북방의 정서이다. 눈에서 멀어져 마음마저 식어가는 대륙의 기백이다"라고 썼다. 그런 면에서 권씨의 이번 시조집이 자랑스럽다고 평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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