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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뽑을진 아직…” 표심은 신호 대기 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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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호 01면

[박민제 기자의 ‘민심 택시’] 8시간 운전하며 들어보니 

민심(民心).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보다 더 자주 쓰이는 단어가 있을까. 누구나 다 얘기하지만 이만큼 실체를 알기 어려운 단어가 또 있을까. 본지 박민제 기자가 선거일을 20일 앞둔 지난 19일 택시 운전석에 앉았다. 숫자로만 존재하는 여론조사 결과 너머에 있는 실제 국민의 목소리를 보다 생생하게 듣기 위해서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서울 시내 150여㎞를 이동하며 총 13명의 승객을 태웠다. 이 중 인터뷰에 동의한 10명에게 ‘2017 대선 민심’에 대해 들었다.

승객 10명이 전한 대선 민심 #7명 맘 못 정해, 3명 오락가락 #문·안 지지 표심도 유동적 #유·심 좋은데 사표될까 걱정

오후 4시쯤 관악산 입구에서 임재문(43)씨가 승차했다. 대방동에 있는 과학 보습학원 원장인 임씨는 학원에 강의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전 선거에서 대체로 야당 쪽에 투표해온 그에게 지지 후보를 물었다.

오락가락하는 중이에요. 어느 때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가 중요한 상황인데 누구를 뽑을진 아직 모르겠어요.”

왜 그렇죠.
“대선이 급박하게 치러지다 보니 후보들의 정책이 어떤 건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또 유력 후보들이 보수 대 진보로 명확하게 나눠졌던 이전 선거와 달리 전선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있고요. 2번(홍준표)이 흔들리니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더 많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진보정당 지지자로선 고민이 덜할 거 같은데.
“사실 사생결단식으로 진행된 이전 선거와 비교하면 축제죠. 그런데 제가 정말 마음이 가는 분들은 당선 가능성이 없어서 고민입니다. TV토론을 보니 4번(유승민), 5번(심상정) 쪽에 마음이 가는데 찍으면 사표가 될 거 같아서요. 그래도 이번 한 번은 미래에 투자하고 싶어요. 지금 상황으로선 제가 안 찍어도 문재인 후보가 될 거 같으니까요.”

택시 운전석에서 확인한 민심은 임씨처럼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한 최적의 길을 찾는 중이었다. 신호 대기 중인 차량이 내비게이션을 보며 직진, 좌·우회전을 고민하는 것처럼 어느 후보를 선택할지를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 이날 인터뷰에 응한 모든 승객이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했지만 3명을 제외하고는 지지 후보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지지 후보가 있다고 한 3명도 남은 20일간 지지 후보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전통적인 보수정당 지지자도 마찬가지였다. 삼호가든맨션 앞 네거리에서 선릉역으로 가기 위해 승차한 서덕실(58)씨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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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선 안철수 후보를 생각하고 있어요. 청렴할 거 같아서요. 똑똑하기도 하고. 보수 쪽엔 저 같이 얘기하는 사람 많아요. 문 후보는 너무 적폐세력이라고 몰아붙이고 대북정책도 불안해서 싫어요. 그렇다고 안 후보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건 아니에요. 대통령감인지는 의문이에요. 만약 유승민 후보가 안 후보만큼 올라오면 그쪽을 택하고 싶어요. 안 될 거 같으니까 고민이죠.”

지난 19일 하루 동안 본지 박민제 기자가 택시를 운전하며 만난 시민들은 각자 기준에 따라 “선거 당일까지 고심해 한 표를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동영상 캡처]

지난 19일 하루 동안 본지 박민제 기자가 택시를 운전하며 만난 시민들은 각자 기준에 따라 “선거 당일까지 고심해 한 표를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동영상 캡처]

촛불민심을 주도한 젊은 층의 생각은 어떨까. 서울대입구역 네거리에서 탑승한 대학원생 이창희(28)씨는 차선책을 고심 중이라고 했다. 그는 10여 차례에 걸쳐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고 했다.

“가장 호감 갔던 이재명 후보가 탈락했어요. 차선책으로 문 후보를 생각 중이에요. 전 다음 대통령이 최우선적으로 지난 정권들의 잘못을 명백히 수사해 처벌해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안 후보보단 문 후보가 잘할 것 같아요. 하지만 문 후보도 정책적인 면에선 완전히 마음에 들진 않아요. 특히 대북정책요. 개성공단 재개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어요. 최소한 ‘쌀을 보내 핵이 됐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잖아요.”

서초동에서 승차한 박지은(32)씨는 당보단 정책을 보겠다고 했다. 그는 4세 아이를 둔 어머니다. “이번에는 누구를 꼭 찍어야겠다는 마음이 없어요. 몇 번의 선거를 경험하면서 이젠 정치인들이 뭘 해주겠다는 걸 믿지 못하게 된 거 같아요. 지금껏 계속 배신당해 왔잖아요. 그래서 정책을 보려고요. 어떤 정책을 가지고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해결하려 하는지가 제 기준이에요. 특히 아이 엄마로서 미세먼지 정책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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