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100만㎡ 대지에 가곡 '보리밭' 같은 초록 물결 #오늘 축제 개막…다음 달 14일까지 #보리의 재발견…먹거리가 볼거리로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도 유명
박화목(1924~2005) 작사, 윤용하(1922~1965) 작곡의 가곡 '보리밭'이다.
황해도 황주 출신의 아동 문학가 박화목은 6·25전쟁이 일어나 부산으로 피란갔던 1952년 어느 날 저물녘 빈 보리밭을 바라보며 이 시(詩)를 지었다. 황해도 은율 태생의 실향민 작곡가 윤용하가 박화목의 시로 노래를 만들었다.
이런 배경 탓일까. 이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그리움에 사무치곤 한다. 대상이 무슨 상관이랴. 고향이든 부모님이든 옛사랑이든….
이 곡이 발표된 1950년대만 해도 보리는 없어서 못 먹는 귀한 먹거리였다. 묵은 곡식은 바닥이 나고 햇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식량 사정이 어려운 5~6월을 보릿고개라 부르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한국인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보리가 요즘에는 훌륭한 볼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잠시 두 눈을 감고 상상해 보라.서울 여의도 면적(2.9㎢)의 3분의 1이나 되는 드넓은 대지(100만㎡)에 그림같이 펼쳐진 청보리밭….
전북 고창군 공음면 학원관광농원에 가면 상상은 곧바로 현실이 된다. 거대한 초록 물결이 일렁이는 청보리밭을 눈앞에서 볼 수 있어서다. 스위스의 '알프스 초원'이 부럽지 않다.
고창은 옛 지명이 모양현(牟陽縣)일 만큼 '보리가 잘 자라는 고장'이다. '모(牟)'는 보리, '양(陽)'은 태양을 뜻한다.
때마침 이곳에서는 22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23일간 '고창 청보리밭축제'가 열린다.
올해 축제의 주제는 '한국인의 본향 고창! 도깨비가 사랑한 청보리밭!'이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김신 역)와 김고은(지은탁 역)의 결혼식 장면을 지난해 가을 이곳 메밀밭에서 촬영한 게 모티브가 됐다.
고창 청보리밭은 계절마다 유채(봄)·해바라기(여름)·코스모스·메밀(이상 가을) 밭으로 바뀌며 손님을 맞는다. 봄에는 청보리밭과 함께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고 겨울은 하얀 설경이 유명하다.
고창군이 주최하고 고창청보리밭축제위원회가 주관하며 농협 고창군지부·한수원(주) 한빛원자력본부·상하농원이 후원하는 이 축제는 올해로 14회째를 맞았다.
인구 5만9000여 명에 불과한 고창군은 지난 2004년부터 청보리밭축제를 열면서 홍보 효과는 물론 경제적 이익까지 얻고 있다. 매년 30만~5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연간 200억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때문에 고창 청보리밭축제는 1차 산업인 농업과 3차 산업인 관광이 결합한 경관농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게다가 축제 기간 내내 보리 관련 음식 만들기부터 널뛰기·굴렁쇠·투호 등 전통놀이까지 다양한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전통 한복과 옛날 교복을 입고 청보리밭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거나 마차를 타고 보리밭 사잇길을 누빌 수도 있다. 농경 유물 100여 점도 전시된다.
박우정 고창군수는 "어른들은 어릴 적 향수를 되새기고 아이들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찾아가는 길: 전북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길 158-6(내비게이션 목적지 '선동초등학교')
▶문의: 063-562-9897
▶홈페이지: http://chungbori.gochang.go.kr
고창=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