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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안보불안 문재인’ ‘믿기 힘든 안철수’ ‘인기 없는 홍준표’ 사이서 고심하는 보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번에 누구 찍으십니까”

19일 오후 부산 서면의 한 식당 앞. 김모(여·59·자영업)씨에게 질문하자 “그런 걸 왜 묻습니꺼”라면서도 자기 손을 보라고 눈짓했다. 그는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기호 3번(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을 가리키는 신호였다. 안 후보의 정책 중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드느냐고 다시 묻자 잠시 고민하던 김씨는 다시 손가락 하나를 접어 두 개(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들어 보였다. “사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나 안 후보나 다 호남 아이가. 우리끼린 다 홍준표 찍기로 했습니더”. 급하게 손가락을 하나 접은 김씨의 표정에서 보수의 복잡한 셈법이 엿보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18일 부산 서면을 찾아 보수세력 결집을 촉구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18일 부산 서면을 찾아 보수세력 결집을 촉구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대선 후보들의 선거 유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8일 대구 동성로와 부산 서면을 방문해 유권자들을 만났다. 최근 두 번의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던 그들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기자의 질문에 대부분의 유권자가 “아직 못 정했다”, “고민 중인데”라며 말문을 열었다.

기자의 질문에 응한 12명 중 9명은 “투표할 사람이 없다”거나 “투표하기 싫다”고 손사래를 치며 대화를 시작했다. 대구에서 만난 이성곤(75·은퇴)씨는 “내가 5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뽑았고 참 좋아했으요. 근데 나라를 그래 만들고 반성도 안 하데. 이런 벼락치기 대선에서 또 누굴 뽑아 죄를 짓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김태진(33·자영업)씨 역시 “가급적 이번에는 투표하기가 싫네예. 그래도 내가 뽑은 정권이 망한 데 부채의식이 있는데… 차악(次惡)을 뽑아야지예”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부산을 찾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오종택 기자

지난 11일 부산을 찾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오종택 기자

젊은 세대와 50대 이상의 표심은 확연히 갈렸다. 젊은 세대는 상대적으로 문·안 후보, 그중에서도 문 후보로 쏠렸다. 정다솜(여·26·취준생·대구)씨는 “마음을 못 정했다”면서도 “2번(자유한국당)은 안 뽑아요. 나라가 확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문·안 두 사람 중 하나인데…”라고 했다. 부산 토박이라고 밝힌 소모(37·직장인)씨도 “문재인·안철수 사이에서 오락가락해예. 홍 후보는 막말을 해서 싫고예”고 말했다. 또다른 30대 남성은 “문·안 사이에서 고민되는데 문 후보를 뽑을라꼬예”라며 “안 후보는 정치 초보라 휘둘릴 것 같아서…”라고 했다.

반면 50대 이상은 홍·안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 택시 운전사인 윤판용(60)씨는 “안 후보가 기업을 경영해 봤으니, 경제를 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꺼”라고 했다. 대구의 손모(여·65·주부)씨는 “1번(문재인)·3번(안철수)은 같은 사람 아닙니꺼. 2번이제”라며 “안 후보가 인기가 높지만 그 뒤엔 박지원 대표가 있으요. 지난 20년간 북한에 퍼줬으면 된 거 아닙니꺼. (북한)핵이 안 날라오게 할라믄 2번 뽑아야제”라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18일 오후 대구 동성로에서 유세중이다. 박종근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18일 오후 대구 동성로에서 유세중이다. 박종근 기자

소위 ‘샤이 보수(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거나 응답시에도 성향을 숨기는 보수성향의 유권자)’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산 서면에서 만난 안모(49·공장운영)씨는 “IT가 중요하고 4차산업이 중요한 시대에는 안철수가 낫제”라고 말했다가 “그런데 막상 선거 날엔 홍 찍제. 강력한 대통령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꺼”라며 즉석에서 지지 후보를 바꿨다. 그는 “마지막날까지 안철수와 홍준표 사이에서 맴이 흔들릴거 같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유권자는 “홍준표를 찍고 싶은데 사표(死票)될까봐…. 홍준표가 25% 넘으면 내 함 밀어줄라꼬”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구·부산=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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