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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스타일 초유의 대북 전략, 전략적 은폐에 역벼랑끝 전술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백악관내 부활절 행사 도중 아리송한 두 마디의 대북 메시지를 내놨다. 축하 인파 사이에서 누군가 “북한에 대한 메시지가 있나”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잘 처신해야 한다(gotta behave)”라고만 말했다. 이날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선 선제타격 가능성을 놓고 “내가 무엇을 할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떠들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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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대북 군사 공격 여부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렸는데 당사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패를 가리는 전략적 은폐로 나서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군사적 해법은 답이 아니다”라며 분명하게 선을 긋고 북한이 바뀔 때까지 외교적ㆍ경제적 압박에 주력하는 전략적 인내로 나섰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업계 현장에서 협상력을 최대화하듯 모든 가능성을 비추면서 진짜 카드를 숨기는 은폐형 압박술로 나서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할지 알리고 싶지 않아" #선제타격 여부 숨긴 채 무력경고 계속 #북한의 '벼랑끝 전술' 역이용 #

 이날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놓고) 모래 위에 레드라인을 그을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에 취한 행동(폭격)은 적절할 때 단호한 행동에 나설 것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선제타격이 대북 정책에 포함됐는지에 대해선 “뭔가가 테이블 위에 있다 없다 얘기하는 게 우리의 옵션 자체를 제한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옵션도 배제치 않는 게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 왔다”고 강조했다.

미군이 IS 근거지에 떨어뜨린 '폭탄의 어머니' MOAB.

지난 15일 미 해군의 항모 칼빈슨함(CVN 70)이 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 미 해군]
7일(현지시간) 지중해에서 미 해군 구축함 로스호(USS Ross)가 시리아 정부군 공군기지를 향해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종합하면 북한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정해 놓지는 않았지만 내부 판단에 따라선 언제든지 북한을 겨냥해 전격적으로 군사적 옵션을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경고다.

미국이 언제 어떤 경우에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에 대한 단서를 전혀 주지 않은 채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식으로 대북 압박을 극대화하겠다는 전술이다.

 트럼프 정부의 전략적 은폐가 심리적 압박으로만 치부되지 않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불허 행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ㆍ중 정상회담 첫날인 지난 6일 시리아를 폭격하며 그간 쌓아왔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우호적 관계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지난해 “푸틴이 오바마보다 더 낫다”고 했던 그는 이번엔 러시아군이 주둔했던 시리아내 공군기지 폭격을 지시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그간 북한의 전유물이던 ‘벼랑끝 전술'을 역으로 구사하는 초유의 전략으로 나서며 과거의 상식을 무너뜨렸다.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으려 하는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수 있다고 협박했던 게 북한이었다. 상황 악화를 막는 쪽은 대체로 한국과 미국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후 이같은 공식이 사라졌다. 


지난해 9월 9일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전격 감행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불법적인 위험한 행동에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새 제재를 포함한 중대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나흘뒤인 13일 미국은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전략폭격기 B-1B를 한반도에 출격시켜 무력 시위에 나섰다.
북한의 대형 도발과 이에 따른 미국의 무력 시위 공식이다.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 직후에도 미국은 B-52 폭격기와 F-22 랩터를 한반도에 출격시켜 분노를 표현했다.
2013년 3월 3차 핵실험 직후에도 B-52, B-2, F-22를 한반도에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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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번엔 반대다.
북한의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가능성이 제기되자 트럼프 정부는 시범 폭격이라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선(先)무력시위로 나섰다.
6일 시리아 폭격과 13일 아프간 폭격으로 '대북 경고장'을 날렸다.
실제로 미국 핵심 당국자들이‘시리아를 보라’는 식으로 말한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파이서 대변인이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은 단호하다”며 시리아 폭격을 예로 든 게 그렇다.
트럼프 정부는 한미 합동의 키리졸브 훈련을 마친 칼빈슨 항모 전단을 다시 한반도 인근 해역으로 불러 들이는 이례적인 조치까지 했다.

 전략적 은폐와 선제적 벼랑끝 압박을 결합한 트럼프 대통령의 강공책이 계속되며 이젠 백악관 브리핑장에서 북한 군사 공격때 의회와 협의하냐는 질문까지 등장했다.
17일 브리핑때 “대북 군사력 동원이 포함된 조치를 결정할 경우 대통령은 독자적으로 행동하나, 아니면 의회가 관여해야 한다고 보고 있나”라는 질문에 스파이서 대변인은 “아마도 헌법 2조의 대통령 권한을 활용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시리아 폭격 때처럼 일단 지시하고 직후에 의회 지도자에 알린다는 취지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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