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와 군중대회에 참가한 주민들은 행사 내내 ‘인간 선전물’이되다시피 했다. 형형색색의 꽃술이나 조형물을 든 수 십 만명 규모의 군중들이 노동당 상징마크나 '결사옹위' 등의 구호를 수놓는 방식이다.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담아 신형 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대거 등장시키는 것과 함께 광장 전체를 선동성 구호를 새기며 분위기를 돋우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광장 열병식 행사가 벌어지는 내내 꽃다발을 들고 ‘김일성’, ‘김정일’, ‘결사옹위’, ‘당 마크’, '태양절' 등 인간구호판을 만드는 사람을 '광장 바닥행사 성원이라고 부른다.
이들 바닥행사 성원들은 직장인들이거나 인민반(우리의 통·반과 비슷한 조직)에서 동원 지시를 받아 나온 사람들이다. 중앙당 선전선동부와 평양시당 행사과의 지시에 따라 중앙기관들을 비롯한 직장들, 인민반들에 행사 인원이 배당된다.
각 단위의 당 위원장들을 책임자로 해서 행사훈련조직을 만들고 하루일이 끝난 후 매일 저녁 김일성광장에 모여 밤늦도록 훈련한다. 열병식 석 달 전부터 시작되는 이러한 훈련은 일요일이나 휴일도 예외가 아니다.
훈련성원들은 준비기간 가슴에 광장대열의 위치(행·열)를 가리키는 표시판을 단다. 그리고 훈련에 참가하는 모든 성원들은 빨간·파랑·노란색·분홍·흰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의 꽃다발을 준비한다. 플라스틱이나 비닐 재질의 꽃다발은 40cm 이상의 길이와 너비를 가지는 크기로 해서 4∼5개를 양손에 전부 들 수 없다. 그래서 행사 동원 주민들은 긴 끈으로 꽃다발을 묶어 목에 걸친다.
훈련은 광장 지붕 쪽에서 보내는 신호에 따라 대열이 움직이거나 혹은 꽃 색깔을 선택하여 순식간에 꽃다발을 들고, 흔들고 하는 연습이다. 훈련에 집중하지 않고 옆 사람과 같은 색의 꽃다발을 올리면 새기려는 글자가 틀려지기 때문에 금세 들통 나버리고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
매일 또는 매주 훈련과정을 당적인 사업으로 ‘총화’(비판 및 결산)하므로 훈련에 결석하기는 힘들다. 개인적으로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책임자에게 담배 등 뇌물을 주고 빠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
김일성광장은 평양 중심가인 중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때문에 먼 곳에서 매일 4∼5개의 커다란 꽃다발 꾸러미를 들고 훈련 다니기는 엄청 힘들다. 많은 행사성원들은 하는 수 없이 광장 주변의 개인집들이나 상점들에 돈을 주고 꽃다발 꾸러미를 맡긴다.
이런 오랜 기간의 훈련과정을 거친 수 만 명에 달하는 ‘바닥행사’ 군중들이 15일 김일성광장 군사퍼레이드 3시간에 걸쳐 오직 신호기만을 주시하며 북한 당국이 의도하는 거대한 정치선전물을 만들어냈다.
이번 열병식 당일은 물론 이튿날까지도 평양 시민들은 편히 쉴 수 없었다고 한다. 만수대동상 꽃다발 증정이나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 경축 공연’ 관람,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방문, ‘4·15기념 체육대회’, 김일성화(花) 전시회 방문, 각종 야회(야간 축제행사) 등 모든 것을 조직별 행사로 진행하다 보니 지난 주말 주민들의 피로가 겹쌓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행사에 참가했던 많은 평양 시민들은 "실컷 자는 것이 소원"이라고 피곤함으로 호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17일 출근하자마자 그들을 기다린 건 조직별로 진행하는 '김정은 동지께 다지는 충성의 선서모임'이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행사다.
김수연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kim.suyeo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