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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반려동물의 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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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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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블룸버그통신이 최근 눈길을 끄는 보도를 했다. “미국에서 2025년이면 교사보다 반려견 교육과 산책을 돕는 도그 워커(Dog Walker)가 더 유망하고, 가정의 반려동물 지출비용이 자녀 교육비용의 세 배에 이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동네 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반려동물의 천국’인 미국의 일만은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공원 산책길이 ‘사람 반, 견공(犬公) 반’이어서다.

동네 목 좋은 곳에 못 보던 병원이 생겼다. 정형외과·심장내과·치과·종양내과·비뇨기과. 일반병원 같지만 ‘동물종합병원’이다. 9년째 반려견 ‘아롱이’와 사는 이웃 부부는 반긴다. 한 살 때 입양한 아롱이는 병치레가 잦아졌는데 병원이 생겨 든든하단다. 얘기를 들어보니 개 팔자가 상팔자다. 개의 수명은 평균 12~15년인데 열 살 아롱이는 사람 나이로는 육순에 가깝다. 얼마 전에는 30만원짜리 종합건강검진으로 온몸을 훑었다. 혈액검사를 시작으로 안과·치과·고혈압·심장질환·흉부방사선 검사에 복부·심장 초음파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시행하는 일반 건강검진 못지않다.

아롱이 검진 결과는 백내장에 기력 저하. 눈 수술을 시키고 6년근 홍삼 성분이 든 건강식품을 먹였단다. “여유가 있으니”하며 웃어넘기려는데 주사 값 얘기가 가슴을 때렸다. 아롱이와 산책을 나갔다 감기에 걸린 남편은 동네 의원에서 3500원, 미세먼지에 기관지가 나빠진 아롱이는 동물병원에서 2만원짜리 주사를 맞았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내색하기도 어려웠다.

무릇 아롱이만 그렇겠는가. 저출산·고령화, 1인 가구 시대에 주인 잘 만나 팔자가 핀 반려동물 말이다. 반려동물 가족을 일컫는 ‘펫밀리(Petmily)’는 국내 가구의 22%, 반려동물 인구는 1000만 명에 이른다. 반려동물 수도 2010년 500만 마리에서 최근 700만 마리를 넘었다. 관련 시장이 올해 2조8900억원 규모에서 2020년에는 6조원으로 성장한다니 펫밀리가 무시 못할 세력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펫밀리 표심 잡기에 나섰다. 지난 주말 서울 월드컵공원 반려견 놀이터를 찾아 반려동물 전담기구 설치 등의 공약을 내놨다.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됐다. 펫밀리들이 ‘펫 의료보험’까지 요구하고 있으니…. 반려동물이 대선후보까지 움직이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다 상팔자가 되는 건 아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 버려진 동물이 연간 9만 마리나 된다. 다 사람 탓이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