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문화사의 양대 산맥, 겸재와 추사 집대성한 노 학자의 마지막 소원

중앙일보

입력 2017.04.16 15:38

학문의 신, 대 학자이자 대 수행자, 조선 문화사 집대성의 선각자…. 50여 년 한마음으로 걸어온 연구자에게 쏟아지는 찬사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삼청로 법련사 대웅전은 가헌(嘉軒) 최완수(75) 선생이 평생 학문에 쏟은 일편단심을 추앙하는 이들로 그득했다. 이날 가헌은 추사 김정희(1786~1856) 연구의 완결판이라 할 『추사 명품(秋史 名品)』(현암사)을 출간했다. 1976년 34세 젊은 미술사학도로 펴낸 『추사집(秋史集)』 이후 40년 만이요, 진경시대 문화연구의 봉우리인 겸재 정선(1676~1759)의 작품과 정신을 전 3권으로 정리한 『겸재(謙齋) 정선(鄭敾)』 완결 뒤 8년 만이다.

가헌은 "이번에 정리한 연보를 토대로 추사의 평전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가헌은 "이번에 정리한 연보를 토대로 추사의 평전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출판기념회를 겸한 자리는 가헌과 평생 교유한 도반과 제자들이 털어놓는 다양한 인연 이야기로 풍성했다. 원색·참고 도판만 400여 장, 2300매 원고의 16차 교정을 거쳐 800쪽 대작으로 뒷바라지한 조미현 현암사 대표는 추사와 가헌과 선친인 조근태(1942~2010) 전 현암사 대표의 만남을 운명이라 했다. 가헌과 선친은 1942년 임오년 말띠, 추사는 1786년 병오년 말띠여서 말띠 세 분이 큰일을 도모하신 셈이라며 “추사 연구의 토대이자 뜻 깊은 전환점이 된 이 명작을 우리 출판사가 낸 건 영광”이라고 인사했다.

지난 15일 서울 삼청로 법륜사 대웅전에서 열린 가헌 최완수 선생의『추사 명품』출판기념회. 가운데 한복 입은 가헌을 중심으로 간송미술관 제자들이 모였다. [사진 김민규]

지난 15일 서울 삼청로 법륜사 대웅전에서 열린 가헌 최완수 선생의『추사 명품』출판기념회. 가운데 한복 입은 가헌을 중심으로 간송미술관 제자들이 모였다.[사진 김민규]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는 “오늘 이 모임은 우리 학계는 물론 나라의 경사라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가헌과 정교수는 1961년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 입학생으로 처음 만나 학문적 동지로 지내온 사이인데 4·19 세대로서 일제강점기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일본색(日本色)을 씻어내는 데 의기투합했다고 회고했다. 정 교수는 “조선이 위대한 문화국가였음을 밝히는 데 미술사연구가 핵심임을 가헌은 일찌감치 간파했고, 겸재와 추사가 양대 산맥이라 확신한 뒤에는 촌음을 아껴 두 거장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밝히는데 매진했다”고 고마워했다.
다음 순간, 참석자들 사이에 웃음이 터졌다. 정 교수가 가헌을 바라보며 “그런데 학문의 신이 되고 싶은 겁니까”라고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가헌이 쉼 없이 공부와 집필에 열중하다 건강을 해칠까 염려하는 55년 벗의 우정 어린 고언이었다.
최완수 선생은 “분에 넘치는 축사였다”며 “좋은 친구들의 격려로 그 고된 일을 해내고 인연이 쌓여 추사 연구를 일단락 지었다”고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1966년 간송미술관에 들어간 뒤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이끌며 수백 명 제자를 길러낸 그는 “나를 욕심쟁이라 하실지 모르겠지만”이란 전제를 달면서 남은 꿈 하나를 얘기했다.

출판기념회에서 인사하는 가헌 최완수 선생. 간송미술관 제자들과 단체 사진

출판기념회에서 인사하는 가헌 최완수 선생. 간송미술관 제자들과 단체 사진

“추사가 남긴 명품을 여덟 분야로 나눠 원문과 번역문을 다 싣고 해설에다 보충 자료를 붙이고 시대별 인장(印章)까지 정리했으니 추사 서화 감상과 감정의 기준을 마련했다고 봅니다. 그만 놓으려 하는데, 한 가지 아쉬운 일이 연보를 토대로 추사 평전을 마무리 했으면 하는 것이지요. 제가 못하면 제자들이 하겠죠.”
‘학신(學神)’과 욕심쟁이 스승의 마지막 희망을 들으며 제자들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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