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사진관] 부활절에 만나는 '어리숙한' 예수.

중앙일보

입력

조각가 장동호(1961~2007)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흔 일곱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작품들이 대부분 기독교를 주제로 한 것이라 대중적이지도 않았던 것도 그가 잊혀진 이유다. 그러나 그는 탁월한 예술가였다. 스승 최종태는 “먹고 사는 일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장차 중요한 일을 해 낼 사람”이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서울 명동성당 사제관 모퉁이에서 그의 작품을 한 점 볼 수 있다. 1994년 작 ‘사형선고 받으심’이다.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예수의 얼굴을 새겼다.  

작품의 전체 높이는 213cm다. 아래 절반은 좌대인데 대못 세 개가 걸려있다. 묵직한 쇠못들은 예수의 몸을 관통한 것으로 십자가 수난의 상징이다.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는 눈을 감고 있다. 매질을 당해서 그런지 눈두덩이 부풀어 올랐다.  

예수는 입을 다물고 있다.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 선 예수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동족 유대인들이 예수의 죄상을 고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예수를 죽이고 싶지 않았던 총독이 “저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느냐”고 답답해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가야 할 길이었기 때문이다. 

장동호가 사용한 돌은 이탈리아 카라라(Carrara)산 대리석이다. 카라라는 고대부터 인물조각에 적합한 무른 대리석의 명산지로 이름난 곳이다. 장동호는 예수의 이목구비와 근육의 흐름을 따라 섬세하게 끌질을 해 표정을 드러냈다.  

사형선고를 받은 예수는 무심해 보인다.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한다. 인간의 체념, 구세주의 한없는 사랑이 이 얼굴에 담겨 있다.

오늘은 부활절이다.  

사진·글=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