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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 붙잡고 기록하는 게 숙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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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호 10면

세월호 유가족 문종택씨의 영상 기록 3년

자료=네이버 트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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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3년 기록 영상 속에 담겨 있는 문종택씨.

세월호 3년 기록 영상 속에 담겨 있는 문종택씨.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옛말이 있다. 그만큼 상실감이 크다는 얘기다. 3년 전 오늘(16일), 수학여행 떠난 아들과 딸을 먼저 보내야 했던 단원고 학부모들의 마음도 그러할 것이다. 넷째 딸 지성이를 잃은 문종택(55)씨도 그 학부모 중 한 사람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카메라를 든 문씨는 3년째 세월호 관련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세월호 유가족방송 416TV(이하 416TV)’에는 그가 만든 영상 700여 개가 등록돼 있다. 3분짜리 짧은 영상에서 3시간이 넘는 긴 것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팽목항, 광화문광장, 목포신항 등 전국을 누비며 문씨가 남긴 영상은 세월호 사고 이후 대한민국을 담고 있다. 지난 13일 선체 세척 작업이 한창이던 목포신항에서 문씨를 만났다. 며칠 전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열린 교민 간담회에 다녀왔다는 그는 수척한 얼굴이었다.

영상 700편 찍어 세월호 3년 기록 #‘416TV’ 유튜브 채널 만들어 공개 #“세월호에 ‘성공’ 붙여선 안 돼 #수사권 없던 진상조사위 아쉬워” #“세월호 안전 상징물로 보존해야 #목포신항 머물며 선체 수습 촬영”

방송을 시작한 계기는 뭔가.

“2014년 8월 8일 방송을 시작했다. 유가족들이 국회 단식 농성을 시작한 첫날이었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여당 의원들은 콧방귀도 안 뀌더라.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정치인들 얼굴 표정이 변하는 게 보였다. 그걸 보고 나서 캠코더를 구해왔다. 녹화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우리들한테 관심을 보이더라. 카메라 촬영과 편집은 현장을 찾은 독립언론인 등에게서 배웠다.”

유튜브에 처음으로 등록된 영상은 ‘2014. 8. 8. 국회 중계-시험방송1’로 2분35초다. 유가족들이 국회 본청 대리석 바닥에서 농성하는 장면이 담겼다. 416TV는 15일 기준으로 1만5073명이 구독하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416TV는 유가족의 목소리를 담아야 하는데 나도 아이를 잃은 아빠이기 때문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나도 어렵다. 팽목항에서 이어지던 행사들이 광화문광장 등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혼자서 영상을 찍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는데 그때 좌절하기도 했다.”
영상을 통해 기성 언론에 대한 불만도 자주 얘기했다.

“(사고 당시) 확인되지 않은 걸 언론들이 ‘받아쓰기’ 했다. 딸이 생존자 명단에 있었는데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다. 확인되지 않았다고 방송사에 전화를 해 명단에서 빼달라고 하면 그날은 빠졌다가도 당직자가 바뀌면 다시 명단에 올랐다. 그런 일이 네 번이나 반복됐다. ‘내가 모르는 곳에 애가 살아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유병언 잡기가 시작됐고 세월호에 대한 관심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게 카메라를 든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엔 인양 성공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세월호에는 성공이란 단어를 붙여선 안 된다. 한 명도 못 구한 것 아닌가. 꼭 붙이고 싶다면 미수습자 모두를 찾은 다음이어야 한다.”

2015년 새해 첫날 영상에서 문씨는 숨진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세월호 사고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동거차도에서다. 그는 “엄마아빠가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못해 줬다”며 카메라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유가족들의 단식과 서명운동, 416TV가 없었다면 세월호특별법 제정도 어렵지 않았을까.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을 하려고 서해안고속도로 모든 휴게소를 훑고 다녔다. 아이 손잡은 어머니와 눈물을 흘리며 이름을 쓰는 젊은이들, ‘추운데 고생하시라’며 핫팩을 날라준 분들이 없었다면 특별법 제정도 힘들었을 거다. 그런 시민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1000만 명 서명을 들고 청와대로 가면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진상조사위원회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주지 못한 것이다. 당시 새누리당이 반대했다. 결국 유가족들이 합의를 했고 기소권과 수사권이 없는 위원회가 출범했다. 당시로선 최선의 판단이라고 믿었는데 탄핵 과정을 지켜보면서 두고두고 아쉽다.”

올해 3월 23일 세월호 인양 현장에서 선체 천공을 처음으로 전한 게 문씨였다. 그는 “사진에서 (선체) 앞쪽을 보면 잘려진 초대형 천공이 있다. 유실 방지막을 치지 않은 천공이다.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고 호소했다. 이후 관련 보도가 이어졌다. 416TV는 팽목항을 떠나 목포신항 철제 울타리 밖에서 선체 수습 과정을 촬영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내부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 선체 처리에 대한 입장은 뭔가.

“어떤 방식으로든 세월호를 보존했으면 한다. 대한민국 안전을 상징하는 그런 장소가 되면 좋겠다.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고 그걸 붙잡고 기록하는 게 남은 사람들의 숙제다.”
416TV의 향후 계획은.

“선체 수습 과정 전부를 영상에 담고 싶다. 세월호는 사고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증거이자 제일 중요한 기록물이다. 작업을 방해할 생각은 없다. 가까이에서 세월호를 촬영할 수 있게만 해달라. 선체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목포신항에 머물 계획이다.”

목포신항 작업자용 쪽문 맞은편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컨테이너 3동이 자리 잡고 있다. 문씨를 비롯한 유가족 수십 명은 까맣게 탄 얼굴로 이곳에서 먹고 자며 세월호 수습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문씨는 말한다. “뉴스처럼 멋진 영상은 아니지만 세월호를 가장 가까이에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그게 416TV의 지향점이다. 언제라도 세월호가 생각나시면 416TV에 접속해달라.”

목포=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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