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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자유선진당 따라가는 자유한국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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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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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을 모르는 생물(生物)이 정치라지만 대세론이야말로 그렇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데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대선 지형은 순식간에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 간 양강 구도로 재편됐다. 철옹성 같아 보이던 문재인 대세론은 흔적이 없다. 게다가 대세론 실종 사태는 이번만도 아니다. 김영삼·박근혜 대세론은 끝까지 먹혔지만 맥없이 주저앉은 이회창 대세론도 있었다. 싸워 보나 마나 이길 거란 게 대세론인데 통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니 형용 모순이 따로 없다.

정권재창출 믿는 보수는 적어 #홍준표 당당해야 부활 길 열려

대세론의 출발점이 여론조사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선판엔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느냐’보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느냐’는 조급한 질문이 많다. 그리고 지지율이 아주 높아 경기가 끝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이어지면 그걸 그냥 대세라고 부른다. 물론 대세론이 생기면 자체의 힘이 덩치를 키워 간다. 그러니 대세론 주자가 이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바람 따라 출렁이는 선거판이다. 앞길에 동남풍이 산들댈지 북풍한설이 몰아칠진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왜(why)’를 들이대면 시대정신이랄까 집단지성으로 불리는 대세론이 있기는 한 것 같다. 만년 야당 김대중 후보의 승리 뒤엔 DJP란 정치공학이 돋보이지만 IMF 외환위기가 있었다. 정치를 잘못해 나라가 부도났는데 그래도 재집권해야겠다는 여당 논리는 궁색했다. 금세기 내에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오바마가 당선됐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집권당이 파산하면 정권은 바뀌는 게 상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생긴 대선이다. 같은 논리면 야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당연한 일이다. 골수 보수층이라도 이번 선거에서 정권 재창출을 확신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미련을 못 버렸다면 기적을 바라는 심정일 게다. 그렇다면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후보는 이번엔 지는 선거가 정답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질서 있게 지느냐가 관건이다. 보수 재건이 걸린 문제다. 책임과 헌신, 희생 없이 드라마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홍 후보와 한국당이 뜨거운 마음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당은 ‘살인자는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 못한다’고 같은 보수를 겨누고, 대선후보는 야밤에 지사직을 던지는 꼼수나 부리니 딱한 일이다. 세금 아끼기 위해서라던데 4·12 재선거를 대선과 떼자고 부득부득 우겨 선거 예산 100억원을 축낸 게 바로 한국당이다. 그때그때 다른 건 해명만도 아니다. 공천하느냐 마느냐도 촛불과 태극기 국면에서 판세 따라 춤췄다. 원칙이라곤 없는 시장통 논리다. 기득권 이미지에 몰려 선거에 연거푸 지던 때의 밉상 한나라당을 닮았다. 그러니 아무리 ‘흙수저’라 써도 ‘웰빙족’으로 읽힌다.

‘보수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라던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대선 도전에 세 번 실패했다. 356만 표(15.1%)를 얻는 데 그친 2007년 세 번째 도전은 ‘스페어 후보론’이 출마 명분이었다. 진심이었다면 검찰의 BBK 수사가 일단락된 시점에 대선전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랬다면 아마 진정성이란 소중한 밑천을 만들었을 게다. 하지만 완주해 보수 표를 나눴고 금쪽같은 재기의 기회도 함께 날렸다. 18석 충청 지역당인 자유선진당이 그의 종착지였다. 그나마 다음 선거에선 5석으로 침몰했다.

상주 재선에 이긴 한국당은 지금 축제 분위기다. ‘완벽한 부활’이라며 흥분하고 있다. 하지만 텃밭 재선 민심이고 안철수와 다툰 게 아니다. 100석 가까운 전국당인 한국당은 보수표가 왜 홍준표가 아닌 40석의 지역당 후보인 안철수로 향했는지 뼈아프게 따져야 한다. 홍 후보는 자유한국당이 이러다 TK 자유선진당으로 가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높지도 않은 지지율을 놓고 바른정당과 다투는 정도론 보수를 살리기 어렵다. 당당해야 한다. 당당함이 없는 홍준표는 홍준표가 아니다. 보수도 아니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