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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전기차 후진국’으로 낙오하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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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문희철 기자 중앙일보 기자
문희철 산업부 기자

문희철
산업부 기자

중앙일보 4월 11일자(B2면)에 게재된 ‘서울~대전 길 봉변당한 전기차’ 기사를 읽고 충북 청주에 사는 독자가 e메일을 보내왔다. 액화석유가스(LPG) 차량을 15년째 몬다는 독자는 “전기차를 구매하려고 했었는데 기사를 읽고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기자가 전기차 충전을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모습이, LPG차 구입 당시 가스 충전소를 찾아 헤매던 시절과 오버랩된 듯했다.

전기차를 탔다가 봉변을 당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전기차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서다. 정부는 “최선을 다해 충전소를 늘리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1139기인 충전기를 정부는 2020년까지 3000기로 늘린다고 한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전기차가 국내 처음 등장한 건 1995년(현대 FGV-1)이다. 일반 대중에게 판매가 시작(2009년)된 지도 8년이 지났다. 이 차량은 기름을 넣어도 되지만 전기로 달릴 수도 있다. 순수 전기차 시대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였다.

이렇게 전기차 시대를 준비할 시간이 주어졌었지만 정부는 이제 와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움직인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한국이 손 놓고 있을 때 중국은 저만치 앞서갔다. 중국의 지난해 전기차 누적 판매 대수는 80만2100대에 달한다. 한국(1만2000대)과 비교하기조차 부끄럽다. 노르웨이·네덜란드 등 전기차 선진국 도로에서도 쉽게 전기차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이 팔짱 끼고 관망하는 동안 자동차 제조사들도 전기차 제조 기술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기자가 시승했던 전기차 볼트EV가 대표적이다. 급제동 시 반응속도가 느린 점을 제외하면 별로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힘이 약할 줄 알았는데 오르막길 순간가속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코너링도 꽤 만족할 만했다. 엔진 대신 크기가 작은 모터를 달았기 때문에 실내·수납 공간도 넉넉하다. 배기가스가 없어 지구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이 얼마나 좋은가.

제도 시행·운영상 허점도 개선해야 한다. 대부분의 전기차 충전기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녹슬거나 거미줄에 둘러싸여 있었다. 공영주차장·혼잡통행료 할인 등의 혜택도 시승하는 동안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민간업체가 만든 전기차 충전소 애플리케이션도 보완·관리가 필요하다. 정부는 웹페이지로만 충전소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GPS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웹사이트를 쳐다보면서 충전소를 찾다간 교통사고가 날 수 있다. 전기차 후진국으로 전락한 느낌이지만, 한국만 시대 변화를 거부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제라도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 전기차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 e메일을 보낸 독자에게 “당장 전기차를 구매하는 게 현명하죠!”라는 답변을 보낼 수 있도록.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달렸다.

문희철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