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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명태와 노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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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논설위원

박정호논설위원

명태는 한자로 ‘明太’라고 쓴다. 밝을 명, 클 태, ‘밝게 해주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동해 바닷가 사람들은 명태 내장에서 거둔 기름을 불을 지피는 데 썼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펴낸 보고서 『명태와 황태덕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또 조선시대 함경도 삼수갑산 농민들은 ‘명태의 간을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영양실조로 눈이 침침해질 때 명태의 효험을 봤다고 한다.

명태는 한국 전통의례에 신성한 제물로 등장한다. 값싸고 맛있는 물고기이기에 가난한 집에서도 제사상에 단골로 올렸다. 특히 악한 기운을 막는 벽사(?邪) 기능이 컸다. 늘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이라 지킴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새 차를 사면 통북어를 매달고 무사안전을 기원하곤 한다. 북어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형태가 변하는 않는 내구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요즘 명태는 매우 귀한 몸이다. ‘국민 생선’으로 불릴 만큼 흔한 생선이었지만 우리 바다에서 씨가 마른 지 10여 년이 넘었다. 무분별한 남획과 지구온난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1987년 47만t에 달했던 어획량이 2008년에는 공식 기록 ‘0’으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요즘 식탁에 오르는 명태는 십중팔구 러시아산이요, 겨우내 덕장에서 정성껏 만든 황태 또한 70%가 중국산이다.

검푸른 동해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다녔던 명태는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걸까. 다행히 좋은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명태를 완전 양식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번에는 자연산 암컷과 양식 수컷 사이에서 나온 수정란을 치어로 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3년 전 시작한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 덕분이다. 서민의 양식인 명태가 하루속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명태를 풍자한 속담도 많다. 공교롭게 부정적인 표현이 많다. ‘노가리를 푼다(깐다)’가 대표적이다. 술안주로 인기 있는 노가리는 잘 알려진 대로 명태의 새끼를 일컫는다. 명태 한 마리가 낳을 수 있는 알은 10만~100만 개. 속담은 그만큼 잡담이 많거나 거짓말하는 경우를 빗대고 있다.

대선 정국에 난무하는 가짜 뉴스도 그런 노가리 중 하나이리라. 명태의 ‘밝은 눈’으로 허위 정보를 경계할 때다. 우리의 앞날을 가를 자칫 썩은 동태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일제강점기 시인 백석(1912~96)은 명태를 이렇게 노래했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新羅) 백성의 향수(鄕愁)도 맛본다’(‘북관’). 명태는 우리 마음의 고향이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