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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소, 떴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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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0일 충북 청주시 내수읍 구성리에 있는 최재남씨(55)의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20개월 된 칡소(수소). 몸통에 검은 줄무늬가 있다. [청주=최종권 기자]

지난 10일 충북 청주시 내수읍 구성리에 있는 최재남씨(55)의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20개월 된 칡소(수소). 몸통에 검은 줄무늬가 있다. [청주=최종권 기자]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중략)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칡넝쿨 감은 듯한 줄무늬 토종 한우 #정지용 시 ‘향수’에 나오는 얼룩빼기 #일제, 표준 한우 만든다며 도태시켜 #충북도 복원 성공, 3600마리로 늘어 #일반 암소보다 25% 비싸게 거래 #육질 부드럽고 고소, 백화점 입점도

충북 옥천이 고향인 정지용 시인이 1927년 발표한 시 ‘향수(鄕愁)’엔 얼룩빼기(얼룩백이의 표준어) 황소가 나온다. 지난 10일 충북 청주시 내수읍의 한 축사에서 자라는 황소엔 검은 줄무늬가 선명했다. 농장주 최재남(55)씨는 “얼룩빼기 황소는 바로 칡소”라고 말했다. 온몸을 칡넝쿨로 칭칭 감아놓은 듯 검은색 줄무늬를 두른 토종 한우였다. 어깨 근육이 두툼하고 콧등에 검은 빛도 돌았다. 이곳에는 몸집이 900㎏에 달하는 3년생 칡소도 있었다. 칡소 80마리를 기르는 최씨는 “야생성이 강하다 보니 거세를 안 한 수소는 성질이 급한 것 같다”며 “품종 개량이 늦어진 바람에 황우(黃牛)보다 크는 속도는 느리지만 힘이 세고 질병에 강하다”고 말했다.

시인이 읊조린 얼룩빼기 황소, 칡소가 부활하고 있다. 충북도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거의 자취를 감췄던 칡소의 명맥을 잇기 위해 지난 20년간 노력한 결과다. 충북 축산위생연구소는 96년 ‘향토 새 옷 입히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수소문 끝에 음성군 원남면 농가에서 칡소 2마리를 구입한 뒤 종축장에서 복원했다. 우수한 칡소를 교배해 수정란을 생산하고 인공수정을 거쳐 개체 수를 늘려 나갔다. 지금까지 5세대를 거치며 품종 개량이 이뤄졌고 일부 수정란은 충북 지역 농가에 보급했다. 충북에 이어 강원·전북·충남 등 다른 지역에서도 칡소 복원사업에 나서면서 현재 전국적으로 사육 중인 칡소는 3600여 마리로 늘어났다. 충북에선 2008년 전국 최초로 ‘칡소영농조합법인’이 설립돼 13개 농가가 칡소 575마리를 기르고 있다.

무늬가 호랑이와 비슷해 ‘호반우’로도 불려

96년부터 칡소 복원에 참여한 안호 충북도 축산정책팀장은 “아직도 칡소가 우리 고유의 한우라는 사실을 아는 국민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우라고 하면 으레 누런색 또는 적갈색을 띠는 한우, 즉 황우만 생각한다. 하지만 한반도에는 황우를 비롯해 검은색의 흑우(黑牛), 흰색의 백우(白牛), 검푸른색의 청우(靑牛) 등 다양한 소가 2000년 이상 살아왔다. 이 중 하나가 바로 칡소다. 조선 초 집필된 수의학 서적인 『신편집성마의방우의방(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엔 칡소가 리우(?牛·얼룩소)로 표기돼 있다. 칡소의 특이한 얼룩무늬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해석이 있다. 실제로 칡소의 무늬는 호랑이와 비슷해 ‘호반우(虎斑牛)’로도 불린다. 지형이 험준한 산간 지역에서 일소로 쓰이기도 했다. 일제 때 발간된 권업모범장 축산연구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1910년 당시 한우의 약 80%가 지금 흔하게 볼 수 있는 황색의 한우이며, 흑우·칡소 등 다양한 품종이 존재했다고 기록돼 있다.

전문가들은 “칡소의 개체 수가 줄어든 계기는 일제가 1938년 만든 한우 심사표준”이라고 말한다. 일제가 “조선 한우의 모(毛·털)색을 적색으로 한다”고 규정하면서 털 색깔을 통일하는 바람에 다른 색깔의 품종은 도태시킨 것이다. 반면 일제는 1910~45년 150만 마리 이상의 한우를 한반도에서 반출했다는 기록도 있다.

충북도는 칡소 복원에 성공하면서 2009년 충북산 칡소 이름을 ‘호반칡소’로 지어 상표를 출원·등록하기도 했다. 지난달 24일부터 서울 롯데백화점 강남점 등 6곳에서 호반칡소 고기가 판매되고 있다.

칡소의 우수성은 상품성으로 입증된다. 칡소는 부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 한우보다 30% 이상 비싸다. 지난달 롯데백화점 정육코너에서 충북산 칡소 100g(등심 1등급 기준)이 1만800원에 판매됐다. 당시 일반 한우 100g 가격은 7300원이었다. 최재원 충북 축산위생연구소 종축장 장장은 “칡소 고기는 육질이 부드럽고 지방산을 구성하는 올레인산 함량이 일반 한우보다 1~2% 높아 고소한 맛이 강하다”며 “살아 있는 칡소는 일반 한우 암소(600㎏ 기준)보다 25% 비싸게 거래된다”고 말했다.

안호 충북도 축산정책팀장은 “20년간 쌓은 칡소 생산 기술을 농가에 더 널리 보급해 우량 칡소를 더 많이 생산하겠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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