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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살려주세요" … 법원은 '그만'이라고 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1일(현지시간) 영국 고등법원 가정부 재판정. 프란시스 판사가 판결문을 읽어내려가자 젊은 부부가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고통스러워했다. 남편인 크리스 가드(32)는 판사의 발언 도중 ‘안 돼(No)’라고 소리쳤고, 아내인 코니 예이츠(31)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부부는 판결 내용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재판정을 뛰쳐나갔다.  


 런던에 사는 우편배달부 크리스와 아내 코니는 지난해 8월 첫 아이를 낳았다. 부모가 된 흥분과 감동을 맛본 지 8주 만에 건강하던 아들 찰리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그레이트 올몬드 스트리트 병원에 입원했다. 그로부터 6개월여가 지난 지금, 찰리는 인공호흡기를 통해서만 겨우 숨을 쉬고 있다.

희귀 유전질환으로 의료진으로부터 연명 치료 중단을 권고받은 찰리와 부모. [데일리메일]

희귀 유전질환으로 의료진으로부터 연명 치료 중단을 권고받은 찰리와 부모. [데일리메일]

이 가족에게 닥친 시련은 수백만분의 1 확률로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었다. 부부는 자신들이 각각 불량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찰리가 아파 병원에 와서 검사하고서야 알게 됐다. 백만명 중에 한두 명이 가진 결함인데, 두 사람이 결혼해 낳은 아이가 유전 질환을 가질 확률은 더 희박했다. 그런 고통이 찰리에게 덮쳐왔다.

"미국에 가면 치료법 있다" 성금 모았지만 #英 법원 "회생 가능성 없어" 연명 중단 판결 #"8개월 찰리에게 사형선고" 부모 항소 방침

찰리는 미토콘드리아 결핍 증후군(MDS)을 앓아 근육과 인체 기관의 기능이 급격히 약화했다. 세계에서 16번째로 해당 질환을 진단받은 것이라고 데일리메일 등 영국 언론은 전했다. 병원 의료진은 찰리를 낫게 할 방안을 모색했지만, 현재 의학에선 치료법이 없었다.

 의료진은 찰리의 뇌가 사실상 정지 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숨을 쉴 수조차 없는 데다 눈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됐다며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찰리가 위엄있게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해주자고 부부에게 권했다.

 하지만 가드와 코니는 동의할 수 없었다. 4개월여 동안 아이의 병상 옆에서 떠나지 않고 매 순간 아이를 관찰해온 부모는 의료진과 의견이 달랐다. 코니는 “전체 몸의 근육이 1~2%밖에 살아있지 않지만 엄마이기 때문에 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찰리는 눈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부가 아들을 떠나보낼 수 없었던 것은 인터넷 검색 결과 미국의 한 의사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을 치료해 호전시켰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문의한 결과 그 의사는 찰리에게도 같은 처치를 해주겠다고 답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중환자인 찰리를 미국까지 수송할 전세비행기 비용을 제하고 처치만 받는데 120만파운드(약 17억원)가량이 필요했다. 두 사람에겐 꿈에도 만져볼 수 없는 거금이었다.

 코니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Gofundme’에 찰리의 사연을 올렸고, 2개월만인 12일 현재 126만파운드가 모여 치료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됐다. 전 세계의 8만2000여 명이 5파운드에서 5000파운드까지 기부 행렬에 나섰다.

찰리의 치료비를 모금하기 위해 어머니 코니가 개설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치료비인 120만파운드를 넘어섰다.[Gofundme charlie]

찰리의 치료비를 모금하기 위해 어머니 코니가 개설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치료비인 120만파운드를 넘어섰다.[Gofundme charlie]

 하지만 이에 앞서 병원 의료진은 찰리의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영국에선 부모와 의료진이 아이의 치료에 대한 의견이 다를 경우 양측 누구라도 전속 관할권을 위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11일 판결에 나선 프란시스 판사는 “마음이 무겁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찰리가 태어난 순간부터 이 훌륭한 소년에 대해 절대적인 헌신을 해오고, (미국 치료를 위한) 용감한 캠페인에 나선 부모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프란시스 판사는 “오늘이 부부에게 가장 어두운 날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찰리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그가 평화롭게 풀려나 더 고통스러워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근육 악화와 뇌 손상으로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찰리를 더 붙잡아 두는 것은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더욱 고단하게 할 뿐이라는 의료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병원측은 미국 의사의 처치도 아직까지 해당 질환을 낫게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프란시스 판사는 “우리는 찰리가 고통을 받고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부부는 병상에서 찰리 옆에 늘 놔뒀던 검은 원숭이 인형을 법정에 들고갔었다. 이날 판결에 대해 “찰리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라고 반발한 부부는 변호사를 통해 항소 입장을 밝혔다.

 최종 법적 판단이 내려지기까지 찰리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게 됐다. 8개월 유아의 연명치료 중단 여부는 추후 가려질 전망이다.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코니는 “미국에서 치료를 받더라도 낫지 않을 수 있단 걸 안다"며 “그렇다하더라도 최소한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죽어가는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치료법이 있다는데 그 희망을 좇지 않고 아이를 죽게 허락할 부모가 있느냐고 영국 언론들은 묻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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