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민 기자의 心스틸러]"올해 봄노래는 나야나" 피터한 '봄스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벚꽃엔딩'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다큐멘터리 '다시, 벚꽃'. 장범준이 버스킹을 하고 있다. [사진 진진]

'벚꽃엔딩'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다큐멘터리 '다시, 벚꽃'. 장범준이 버스킹을 하고 있다. [사진 진진]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휘날리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자동반사적으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2012년 버스커 버스커가 선보인 ‘벚꽃엔딩’이 바로 그것. 올해는 한술 더 떠 ‘다시, 벚꽃’이라는 영화까지 나왔다. 매년 봄이면 다시금 차트에 등장하는 노래를 두고 ‘좀비 엔딩’이니, 대체 그 저작권료 수입이 얼마나 될까 부러워 하는 ‘벚꽃 연금’이니 하는 얘기가 나오다 보니 아예 벚꽃 뒤에 가려져 있는 장범준의 민낯을 보여주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이다.


당연히 봄 시즌송 시장은 점점 더 치열해졌다. 봄이 되면 살랑이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 별다른 홍보 없이도 찾아 듣는 청자가 존재하고, 한번 터졌다 하면 크리스마스 캐럴 못지 않은 수익을 보장해 주는데 이를 마다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더구나 싱글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계절에 맞춰 시즌송을 만들기도 한층 용이해졌다. 정규 앨범에 대한 부담감 없이 한 곡만 잘 만들어뒀다가 올해처럼 벚꽃이 예년보다 빨리 피면 빨리 피는대로, 또 늦으면 늦는 대로 개화시기에 맞춰서 발표하면 되니 말이다.

'벚꽃엔딩' 이후 봄마다 쏟아지는 시즌송 #올해는 장범준 다큐 '다시, 벚꽃'도 나와 #'너란 봄' '왜 또 봄이야' 등 봄노래 인기 #K팝스타 출신 피터한 데뷔곡 눈에 띄어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올해도 글렀나봄 페스티벌'에서 '봄이 좋냐??'를 부르고 있는 10cm. [뉴시스]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올해도 글렀나봄 페스티벌'에서 '봄이 좋냐??'를 부르고 있는 10cm. [뉴시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랑받는 봄 노래를 만든다는 게 어디 그리 호락호락할까. 올해만 ‘벚꽃샤워’(세모로), ‘벚꽃 청춘’(꿈빛밴드), ‘벚꽃 소풍’(선셋 글로우) 등 ‘포스트 벚꽃엔딩’을 꿈꾸며 새롭게 등장한 노래가 십수 곡이다. 봄이라고 어디 다르랴. “꽃가루 알러지 있는데/ 누구 좋으라고 또 봄이야”라고 차오루ㆍ키썸ㆍ예린이 떼로 칭얼대는 ‘왜 또 봄이야’부터 “너란 봄 봄 봄봄봄 너란 놈 어디 있는 거니”라며 봄 맞아 님 찾는 정은지의 ‘너란 봄’까지 유형도 다양하다. 하지만 ‘봄 사랑 벚꽃 말고’(하이포ㆍ아이유)라고 말하는 당돌함이나 ‘봄이 좋냐??’(10cm)고 되치는 당찬 포부 정도는 되야 세월이 흘러도 기억이 나지 않을까.

첫 싱글 '봄 스윙'을 발표한 피터한. 쏟아지는 봄 노래 중에서도 눈에 띈다. [사진 무브먼트제너레이션]

첫 싱글 '봄 스윙'을 발표한 피터한. 쏟아지는 봄 노래 중에서도 눈에 띈다. [사진 무브먼트제너레이션]

그런 측면에서 올해 내 마음을 훔친 봄 노래는 피터한(24)의 ‘봄 스윙’이다. 자고로 봄이라면 이정도 해 줘야지 하는 달콤한 멜로디에 스윙 리듬이 더해져 전개가 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K팝스타’에서 박진영이 “요즘 대중가요엔 스윙 리듬을 사용하지 않아 어린 친구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박자”라고 몇 차례나 말했던 그 스윙이다. K팝은 물론 현재 팝음악에서도 좀처럼 듣기 힘든 선율이지만 바꿔말하면 그만큼 희소성이 있단 얘기다.

한국어 버전보다 먼저 만들었다는 영어 버전에는 이 노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가 담겨있다. 한강을 따라 핀 벚꽃나무 주변을 거닐며 멜로디가 어떻게 귓가에 속삭였는지, 이 노래가 어떻게 닫힌 문을 열어주게 될지 설렘과 기대감이 곳곳에 녹아들어있다. 영어 제목과 동일한 후렴구 ‘싱 위드 더 스윙’이 반복될수록 자꾸만 발이 근질근질해 아무도 안볼 때 벚꽃나무 아래서 나 혼자 턴이라도 한두 바퀴 하고 싶게 만드니 이 정도면 꽤 성공적인 데뷔곡 아닌가.

'K팝스타 시즌3'에 출연한 피터한이 짜리몽땅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SBS]

'K팝스타 시즌3'에 출연한 피터한이 짜리몽땅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SBS]

낯선 얼굴과 이름이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피터한은 ‘K팝스타 시즌3’ 출신이다. 오스트리아 혼혈의 잘생긴 외모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러 소속사에서 러브콜을 받았으나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기본기를 다졌다. 빈필오케스트라 부악장인 아버지와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 덕에 어릴 적부터 음악 속에 파묻혀 자랐지만 들은 풍월과 작정하고 파고드는 공부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간 독학한 화음과 발성, 기타까지 차근차근 다시 배웠다.

‘K팝스타 시즌6’ 마지막 방송에서 영상으로 ‘컴백 및 데뷔 인사’를 전하긴 했지만 그의 행보는 좀처럼 예측하기 힘들 듯 하다. ‘꽃길’이 보장된 아이돌 제의를 마다하고 오스트리아 군대를 다녀오고(엄연한 군필자다!), 빈대학교 재즈보컬과에 합격했지만 “대중의 취향과 너무 멀어질까” 두려워 영문과로 선회했다고 하는 걸 보니 말이다. 아마 앞으로도 쏟아지는 시선과는 조금씩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을까. 미세먼지 때문에, 옆구리가 허전해 이 봄이 탐탁치 않다고? 그렇다면 한 번쯤 이 노래를 들어보길 권한다. 자신도 모르게 ‘싱 위드 더 스윙’을 흥얼거리며 발을 구르게 될 것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