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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중국집 없는 오지에 찾아가는 '짜장 천사들'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15일 오전 경북 영양군의 오지마을인 청기면 무진리 마을회관. 15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이 마을에 군침 돌게 하는 향기가 가득 퍼졌다. 마을회관 앞에 커다란 무쇠솥이 등장했다. 뜨겁게 달궈진 솥에서 춘장과 다진 돼지고기, 각종 야채들이 한 데 섞여 달달 맛있게 볶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요리집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짜장 냄새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점심 시간이 되자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주민들은 완성된 짜장면을 한 그릇씩 푸짐하게 얻어다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주민들이 오랜만에 짜장면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윤구 무진리 이장은 "우리 산골 사람들은 찜닭, 짜장면 등 배달 음식을 맛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어쩌다 읍내에 장을 보러 나가면 가끔 중식당이나 통닭집을 찾아 맛보는 게 전부"라며 "이렇게 우리 마을에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짜장면을 만들어주니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지난달 15일 경북 영양군 청기면 무진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짜장면을 먹고 있다. [사진 영양군]

지난달 15일 경북 영양군 청기면 무진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짜장면을 먹고 있다. [사진 영양군]

이날은 영양군 종합자원봉사센터에서 매달 운영하는 '짜장면 시키신 마을' 봉사활동이 열린 날이었다. '짜장면 시키신 마을'은 영양군 민간 자원봉사단체인 영양군종합자원봉사센터가 2008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이색 봉사활동이다.

읍·면 소재지와 달리 중식당이 없는 영양군 100여개 리(里), 400여개 반(班) 오지마을 주민들을 위해 짜장면을 직접 조리해 점심으로 대접하는 봉사 사업이다. 10년 가까이 봉사활동을 이어오면서 지금까지 100여 곳을 찾았다. 짜장면을 만드는 데 드는 20여만원은 자원봉사센터 직원 6명과 자원봉사자들이 2000원에서 1만원씩 갹출해 충당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경북 영양군 청기면 무진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짜장면을 먹고 있다. [사진 영양군]

지난달 15일 경북 영양군 청기면 무진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짜장면을 먹고 있다. [사진 영양군]

영양군은 경북은 물론 전국에서도 교통여건이 가장 열악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전국 지자체 중 유일하게 4차선 이상 도로가 없다. 정부가 목표로 삼은 '30분 내 고속도로 진입 가능 구역'에도 포함되지 못한다. 철도가 깔리지 않은 지역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육지 안의 섬'처럼 소외된 오지마을이 많은 편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짜장면 시키신 마을'은 짜장면 대접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미용, 장수사진 촬영 및 우체통 제작, 주거개선사업 등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재능기부를 펼친다.

다음달 19일 영양읍 화천2리에서 열릴 행사에선 이른바 '낭만검객의 칼갈이' 서비스가 예정돼 있다. 부엌칼을 비롯해 농사에 사용되는 낫, 호미 등 농기구도 손을 봐준다.  

오도창 영양군 부군수는 "앞으로도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짜장면 배달이 안되는 오지마을 주민들에게 짜장면 한 그릇에 담긴 정을 전하고 화합의 장을 열어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양자원봉사센터 '짜장면 시키신 마을' #2008년부터 100여개 오지마을 찾아 대접 #장수사진 촬영, 주거개선 등 재능 기부도

영양=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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