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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건강, 지켜야 산다] ④'노인전문약사'를 아시나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김진구 기자]

나이를 먹으면 약봉지가 두툼해집니다. 이런저런 병을 치료받으며 수집하듯 모은 처방전을 약국에 갖다 내면 많게는 스무 알 넘는 약을 받아오기도 하죠. 약을 먹는 것만으로도 고역인데, 식전 30분, 식사 중, 식후 30분, 공복 시 등 먹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혼란스럽습니다. 어디 약 먹는 스케줄을 관리해주는 매니저 없을까요?

[실버 건강, 지켜야 산다]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 이야기에 이어 노인의 약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 합니다. 특별히 ‘노인전문약사’를 모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병원약사 중 처음으로 미국 노인전문약사 자격을 딴 분당서울대병원 최나예 약사입니다. 노인전문약사, 쉽게 말해 노인의 약 복용을 전담 관리하는 매니저 같은 존재입니다. 스무 알 넘던 약을 대여섯 알로 줄여주고, 까먹지 않고 약을 제때 먹도록 돕습니다. 최 약사는 노인전문약사가 필요한 이유를 ‘약발’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 최나예 노인의료센터 전담약사


“노인은 ‘나이든 성인’이 아닙니다. 특히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죠. 예를 들어 감기약에 흔히 포함되는 항히스타민제는 입이 마르고 몸을 나른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노인에게는 입이 심하게 말라 입맛이 떨어지고, 나른하다못해 기력이 크게 저하됩니다. 쉽게 쓰러지고 이로 인한 낙상·골절이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수면제나 일부 소화기계 약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부작용을 없애려고 다른 약을 먹기도 하지만, 몸의 부담만 늘리는 꼴입니다.”

사실 병원에서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는 것은 의사입니다. 약사는 그에 따라 조제만 하면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약이 환자에게 부담이 클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의사와 상의해 처방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최 약사는 이를 ‘처방 중재’라고 표현합니다.

“의사의 처방을 검토하는 ‘처방 중재’는 약사의 역할 중에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혹시 생길 수도 있는 문제를 이중으로 걸러내는 거죠. 이 과정에서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약을 없애기도 합니다. 다양한 질환을 앓는 노인이 여러 과를 방문하면 각각의 처방을 받아오죠. 불필요하게 너무 많은 약을 먹게 됩니다. 간혹 약끼리 충돌하거나 부작용을 증폭시키기도 하죠. 노인전문약사는 이런 상황을 없애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노인전문약사는 노인 개개인의 건강상태와 체질, 증상에 따라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줄이는 약 복용을 돕는 거죠.”

처방 중재 말고도 매우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복약 지도’입니다. 노인은 기억력이 떨어져 약사가 전하는 주의사항을 깜빡하기 쉽습니다. 그 전에 시력·청력이 약해진 노인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것 자체가 어렵죠.

“약을 빠트리지 않고 꼬박꼬박 먹도록 하는 게 핵심입니다. 아무래도 먹는 약이 많기 때문에 건너뛰기 쉽거든요. 환자마다 생활방식이 다른데, 일방적으로 아침 6시에 먹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환자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지 늦게 일어나는지, 아침식사는 하는지 거르는지, 아침에 운동을 하는지 안 하는지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에 오랜 시간 환자가 약을 먹어온 습관까지 살핍니다. 결과적으로 같은 약이라도 어떤 환자는 아침 6시에, 어떤 환자는 아침 10시에 먹게 되는 거죠.”

▲ (좌측부터) 서예원 약무교육파트장, 최나예 노인의료센터 전담약사, 이은숙 약제부장

노인에게 큰 도움을 주는 노인전문약사. 그러나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최 약사가 한국이 아닌 미국의 노인전문약사 자격을 딴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아직 정부 차원의 전문약사 제도를 운영하지 않기 때문이죠. 미국은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 1997년부터 노인전문약사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습니다. 캐나다·호주·일본·싱가포르·스웨덴·UAE·파나마에서도 노인전문약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선 최 약사의 선배 약사이자 한국병원약사회장인 이은숙 약사(분당서울대병원 약제부장)가 설명합니다.

“한국병원약사회 차원에서 올해부터 자체적으로 노인전문약사 자격을 부여키로 했습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했을 때 더 늦출 수는 없습니다. 다행히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2003년 개원 이후 10년 넘게 노인전문 약사팀이 활동한 바 있습니다. 이를 자격 인정 사업에 녹여낼 예정입니다. 병원약사뿐 아니라 동네 개국약사의 관심이 매우 큽니다. 정부 역시 노인전문약사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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