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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만난 사람] 초신선 돼지고기 팝니다 … KAIST 출신, 과학영재의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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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육각’ 김재연 대표. KAIST를 졸업한 그는 미국 유학을 앞두고 ‘초신선’ 콘셉트를 내세운 돼지고기 온라인몰을 창업했다. 왼쪽 아래 사진은 도축일자를 표기한 ‘정육각’ 삼겹살 포장으로, 마트 삼겹살과 달리 표면이 울퉁불퉁한 게 특징이다. [김경록 기자]

‘정육각’ 김재연 대표. KAIST를 졸업한 그는 미국 유학을 앞두고 ‘초신선’ 콘셉트를 내세운 돼지고기 온라인몰을 창업했다. 왼쪽 아래 사진은 도축일자를 표기한 ‘정육각’ 삼겹살 포장으로, 마트 삼겹살과 달리 표면이 울퉁불퉁한 게 특징이다. [김경록 기자]

중학교 조기 졸업 후 한국과학영재학교를 나와 KAIST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미국 국무부 장학생 선발까지. 엄친아다. 그런데 미국 유학을 8개월 앞둔 2015년 말 돌연 돼지고기를 팔겠다고 했다. 부모는 유학을 앞둔 아들이 잠시 재미 삼아 해보는 것이라 생각해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8개월 후 아들은 미국행 비행기 대신 돼지고기 농장으로 향했다. 도축 후 1~4일 이내의 초신선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온라인몰 ‘정육각’의 김재연(27) 대표 얘기다.

축산물 유통 ‘정육각’ 김재연 대표 #혼자 삼겹살 구워먹던 초등학생 #미국 국무부 장학생 포기하고 창업 #도축 후 7~45일 내 유통 방식 탈피 #응용수학 전공 살려 시스템 개발 #농장과 직거래해 소비자에게 판매 #“유통기한과 맛은 별개” 지적도

벤처캐피털(캡스톤파트너스)에서 4억원의 투자를 받아 대전에 공장을 세웠고, 이젠 자사 온라인몰에 입점하라는 대기업 요청이 줄을 잇는다.

돼지 도매상과 농장주는 사업 초기 김 대표를 ‘조무래기’ 취급했지만 이젠 1주일에 1t씩 돼지고기를 사는 큰손이라며 반긴다. 원하는 사료로 돼지를 키워주는 지정 농장까지 생겼다.

김재연 대표(왼쪽)와 임직원들. 창업 1년만에 벤처 캐피털에서 4억 펀딩에 성공했다. [사진 정육각]

김재연 대표(왼쪽)와 임직원들. 창업 1년만에 벤처 캐피털에서 4억 펀딩에 성공했다. [사진 정육각]

수학 전공자가 축산업을 택한 이유는.
“돼지고기를 정말 좋아한다. 초등학교 2, 3학년 때부터 혼자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물론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했던 건 아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삼겹살을 사갔는데 그 집 강아지가 내가 사간 삼겹살만 먹고 원래 친구네 집에 있던 삼겹살은 안 먹더라. 안심장보기앱으로 확인하니 내가 사간 건 도축한 지 20일 된 거였고 친구집에 있던 건 100일도 더 된 냉동고기였다. 강아지가 알아챌 정도면 사람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도축장을 검색해 찾아갔다. 돼지 삼겹살 20㎏짜리 한 박스를 사다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눠 줬다. 반응이 좋아서 유학 가기 전 재미 삼아 잠시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기존 돼지고기 유통과 어떤 차이가 있나.
“대형마트 냉장육은 진공포장 상태로 7~45일 동안 유통·판매된다. 우리는 도축 후 1~4일 내 고기를 판다. 돼지는 도축한 후 피를 빼고 스팀으로 소독해 발골 작업을 하는데 이 과정이 1~2일 정도 걸린다. 이후 3일 정도 영하 4~0도에서 비계를 굳힌다. 업계에서는 냉을 맞힌다고 한다. 돼지는 살이 연해 생육 상태로 썰면 비계 부분이 밀려서 울퉁불퉁하게 썰릴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단면이 매끈한 고기를 선호한다. 그래서 이 과정을 거치는 거다. 우리는 이 과정을 없앴다. 그래서 우리 고기는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유통 단계도 줄였다. 보통 돼지고기는 원가가 한 달에 30% 오르내릴만큼 들쭉날쭉하다. 이 때문에 일반 업자들은 30% 내려갔을 때 매입해두는 데 우리는 고객이 주문하면 그날 매입해 판매한다. 또 일반적으로 서너 명의 중도매상이 끼는데 난 이 과정에서 가격이 높아지고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농장과 직거래해 소비자에게 바로 판매한다.”
비쌀 때 사서 팔면 이윤이 적게 남을 텐데.
“공장 자동화 시스템으로 인건비를 낮췄다. 보통 정육업체의 인건비가 매출의 30% 수준이라면 우리는 자동화시스템으로 10%까지 낮췄다. 대학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전산이랑 연관돼 있는 응용수학을 공부했다. 그때 배운 코딩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실시간으로 고객이 주문한 데이터가 공장으로 가니 바로 대응 생산할 수 있다. 휴대전화 하나로 공장 시스템이 다 돌아간다. 예를 들어 대량 주문이 추가로 들어와 휴대전화로 입력하면 공장의 작업 순서가 바뀌어 대량 주문부터 출고할 수 있다. 시스템은 계속 개발 중이다. 앞으로는 작업하는 모든 고기 사진을 찍어 고객이 고기를 받기 전에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고기 사진을 보고 비계 부분이 많아 교체해달라고 하면 발송 전에 교체할 수 있다.”
‘정육각’ 김재연 대표. KAIST를 졸업한 그는 미국 유학을 앞두고 ‘초신선’ 콘셉트를 내세운 돼지고기 온라인몰을 창업했다. 왼쪽 아래 사진은 도축일자를 표기한 ‘정육각’ 삼겹살 포장으로, 마트 삼겹살과 달리 표면이 울퉁불퉁한 게 특징이다. [김경록 기자]

‘정육각’ 김재연 대표. KAIST를 졸업한 그는 미국 유학을 앞두고 ‘초신선’ 콘셉트를 내세운 돼지고기 온라인몰을 창업했다. 왼쪽 아래 사진은 도축일자를 표기한 ‘정육각’ 삼겹살 포장으로, 마트 삼겹살과 달리 표면이 울퉁불퉁한 게 특징이다. [김경록 기자]

악플도 많던데.
“우리에게 부정적인 포스팅이 많은 건 안다. 누군가는 45일이라는 유통기한을 굳이 5일로 줄인 이유가 뭐냐, 그래서 더 맛있다는 건 사기라고도 한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고맙다. 그걸 본 사람들이 궁금해서 한번 먹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먹고 나면 우리 고기를 또 살 거다. 그만큼 자신 있다. 우리가 생산한 2050원짜리 삼겹살·목살과 마트에서 파는 프리미엄등급의 4590원짜리 삼겹살·목살을 비교한 서울대 교수의 품평 글도 봤다. 마트 걸 선택한 사람이 많았지만 둘을 구분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꽤 있었다. 우리 고기가 프리미엄급에 뒤지지 않는다는 얘기 아닐까.”
계속 삼겹살·목살만 팔 계획인가.
“삼겹살과 목살은 내가 자라면서 쭉 먹어본 거니까 자신이 있다. 축산일을 안 해본 내가 여러 부위를 파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갈비만 해도 전용 기계가 필요하다. 국내에선 돼지고기 판매량의 70% 이상이 삼겹살·목살이어서 이것만으로도 경쟁력이 있다. 물론 삼겹살과 목살만 떼오면 비싸다는 건 단점이다.”
힘든 점은 ?
“축산업에 대한 인식이다. 지금은 부모님과 형 모두 내 일을 응원하고 홍보도 해주지만 처음엔 주변에서 ‘아들(동생) 유학갔냐’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 주춤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죄송했다. 한국은 여전히 축산업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본다. 아쉽다. ”
프리미엄 이미지를 내세우면 가격을 더 높여도 될텐데.
“식품은 예외다. 우리 제품의 가격은 마트에서 파는 일반등급(삼겹살)과 비슷하다. 100g 기준 2000원 안팎이다. 주부들이 생각하는 돼지고기 가격 기준은 1800~2300원이다. 이 기준을 넘으면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시중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방향으로 가면서 맛을 높이는 게 우리의 목표다.”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 안에 정육식당 개념의 직영식당을 열 계획이다. 우리 고기를 직접 소비자들에게 맛보여 주기 위해서다. 이달부터 당일 도계한 닭과 당일 산란한 달걀도 팔 예정이다. 현재 600g 단위로 파는 고기는 300g 단위로도 판매하려고 한다. 초신선이라는 우리의 브랜드 정체성을 좀더 많은 사람에게 알렸으면 한다.” 

◆정육각

‘초신선’을 콘셉트로 내세우며 도축 후 1~4일 내 돼지고기만을 판매하는 온라인몰. 농장과 직거래해 ‘당일 매입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삼고, 실시간으로 고객이 주문한 데이터가 공장으로 직접 전달되는 자동화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올해 직영 식당 오픈 및 당일 도계한 닭과 당일 산란한 달걀도 판매할 계획이다.

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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