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런 것까지 해야하나"...담배 트라우마 호소하는 알바생들

중앙일보

입력 2017.04.09 15:09

서울 무교동의 한 편의점 내부. 권혁재 기자

서울 무교동의 한 편의점 내부. 권혁재 기자

 “남자 손님에게는 아이 그림, 여자 손님에게는 발기부전을 상징하는 그림이 부착된 담배를 찾아줍니다.”
지난 7일 자정 무렵,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의 한 편의점에서 만난 아르바이트생 윤모(24)씨는 “담배 손님들에게 성별에 따라 덜 민감하게 받아드릴 그림이 부착된 담배를 뒤지는 건데, 가뜩이나 피곤한 마당에 신경 쓸 일이 하나 더 생겼다”고 말했다. 윤씨가 이렇게 하는 것은 최근 구강암 사진이 붙은 담배를 무심코 건네다 손님으로부터 ”지금 나한테 암 걸리라는 거냐“는 욕설을 듣고서부터다.

서울 문정동의 한 편의점에 일하는 박모(25ㆍ여)씨도 비슷한 고충을 털어놨다. “손님 대부분이 비교적 덜 징그러운 아이 사진과 가족사진을 찾는다. 찾는 사진이 없으면 버럭 화를 내는 사람도 가끔 있다”고 말했다.

국민건강 증진법 개정으로 담뱃갑에 10가지 종류(구강암ㆍ후두암ㆍ뇌졸중 등)의 경고 사진이 부착돼 나온 지 100여일. 부착된 사진을 취사선택하는 흡연자들이 늘어나면서 애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의 고충도 함께 늘고 있다.

10가지 종류의 담배 경고그림 [중앙포토]

10가지 종류의 담배 경고그림 [중앙포토]

일부 아르바이트생은 ‘담뱃갑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력만 3년이라는 정모(27)씨는 “그동안 수백 번 넘게 뜯어온 담배 포장지를 뜯기조차 무섭다. 혐오 사진이 박힌 담배를 매대에 진열하고 그걸 다시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고통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했다. 서울 역삼동의 한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윤모(26)씨는 “얼마 전 만취한 손님이 있는 담배를 전부 꺼내보라고 한 후 가족사진이 새겨진 담배만 골라갔다”며 “징그러운 그림을 보며 담배를 다시 집어넣는데 구역질이 났다”고 말했다.

이런 양태에 대해 일부 흡연자들은 ‘최소한의 권리’라고 주장한다. 하루 한 갑을 태운다는 조모(30)씨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겐 미안하지만, 담배도 하나의 상품”이라며 “조금 덜 징그러운 담배를 고르려는 행위까지 비난하는 건 가혹하다”고 말했다. 박모(32ㆍ여)씨 역시 “담배 가격도 두 배 가까이 올랐는데 최소한 이 정도는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생의 고충이나 흡연자들의 강짜를 떠나, 혐오그림의 효과는 입증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고사진 도입 이후 담배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다. 지난해 12월 2억 9000만 갑이 팔렸는데, 지난 1월에는 2억 8000만 갑, 2월에는 2억 4000만 갑을 기록했다. 보건복지부는 금연효과를 높이고자 이달 안에 흡연자들을 대상으로 경고그림 별 금연효과를 평가한 뒤, 효과가 낮은 그림은 바꿀 계획이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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