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국민연금을 위한 세 가지 변명

중앙일보

입력 2017.04.09 14:54

업데이트 2017.04.09 15:17

또 국민연금이다. 작년엔 ‘최순실 게이트’의 주연급 기관으로 주목받았다. 사익 추구에 동원돼 입은 손실 규모가 특별검사팀이 밝힌 것만 1338억 원이다.


 이번엔 대우조선해양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국민연금이 이 회사 구조조정의 키를 쥐게 됐다. 최순실과 얽힌 ‘원죄’ 탓에 여론은 따갑다. 이쯤이면 뭘 해도 욕먹는 국민연금을 위한 변명도 필요하지 않을까.

 첫째, 국민연금이 왜 대우조선 회사채에 투자했느냐는 의문. 총 3887억 원어치를 들고 있는데 2012~2015년에 발행된 회사채다. 모두 당시엔 투자 가능 등급(AA-~A+)이었다. 국민연금이 지난 1월 말 현재 국내 채권에 투자한 금액은 280조원을 웃돈다.

 둘째, 분식회계가 드러났는데 왜 팔지 않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2015년 분식회계 사실이 알려진 후 대우조선의 신용등급은 급락했다. 순식간에 투기 등급이 됐다. 장내 채권 시장은 거래 규모가 워낙 작다. 국민연금의 물량을 소화해 줄 수 없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이 채권을 내놓았다면 팔지도 못한 채 가격은 폭락했을 것이다. 사실상 매도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들 채권에는 부채비율이 500~800%를 넘으면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붙어 있다. 국민연금은 2015년 9월 대우조선에 회사채 상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국민연금이 상환해 가면 다른 채권자도 동시다발적으로 상환을 요구할 테고, 그러면 회사가 부도날 수밖에 없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회사가 부도나면 투자자가 건질 수 있는 돈은 극히 적다. 국민연금은 산은을 믿었다. 

 그리고 다음 달, 속칭 ‘서별관회의’를 통해 4조2000억원이 지원되면서 실제로 대우조선이 살아났다.

 마지막으로, 대우조선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국민연금에 있다는 오해에 대해서다. 망해 가는 기업을 살리는 데 국민의 노후 자금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게 여론이다. 채무조정안에 반대해야 한다고 한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반대로 대우조선이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에 들어가면 손실 규모가 더 커진다고 압박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현재의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이면 2682억원, 거부하면 3887억원의 평가손실을 입는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①왜 대우조선 회사채에 투자?…발행 당시엔 투자등급
②분식회계 드러난 후 왜 안 팔았나?…사실상 어려워
③대우조선 잘못되면 국민연금 탓?…투자자에 불과
“연금 가입자 이익 최우선”…책임론 회피에 급급해선 안돼

 익명을 요청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연금 가입자에게 최선이 무엇인지가 유일한 고려사항”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회사채 투자자일 뿐이다. 대우조선의 운명이 국민연금에 달렸고, 결과에 대한 책임이 국민연금으로 귀결되는 지금의 프레임이 무척 억울하겠다.

 억울해 하지 마시라. 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위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다한다면, 무조건 응원할 테니. 차후 불거질 책임론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이 간간이 보여 노파심에 하는 말이다.

고란 경제부 기자

고란 경제부 기자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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