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퍼 사이클’ 덕에 구매자 몰리며 몸값 올라

중앙선데이

입력 2017.04.09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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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호 18면

애플까지 나선 日 도시바 인수전

지난 7일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9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분기 기준으로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올렸던 2013년 3분기(10조1600억원)에 이어 사상 두번째로 높다. 1분기는 전통적으로 스마트폰·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 판매량이 뚝 떨어지는 시기다. 결국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이 삼성 실적을 이끌었다는 이야기다. 이 부문의 영업이익은 6조1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9조9000억원 가운데 62%를 반도체 부문이 올린 셈이다. 갤럭시의 삼성전자가 다시 한 번 반도체의 삼성전자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형국이다.

삼성전자, 올들어 반도체 이익 6조
낸드 2위 도시바 가치 연일 상승
하이닉스 이어 애플·구글도 관심

UBS “반도체 호황 정점 찍었다”
중국 굴기, 이르면 내년에 현실로

이처럼 반도체 시장이 대호황, 즉 ‘수퍼 사이클’에 들어섰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전 세계 주요 정보기술(IT) 업체들은 일본 반도체 업체 도시바메모리가 누구 품에 안길 지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 입장에서 도시바를 현 시점에서 매각하는 건 사실상 ‘눈물의 바겐세일’과 다름없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7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낸드플래시를 개발한 곳이 도시바다. 지금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도시바는 2위(19.6%) 업체다. 그렇지만 1조6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 스캔들, 원자력 발전소 업체인 미국 웨스팅하우스(WH) 인수 실패가 문제였다. 결국 도시바는 주력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 부문을 내다 팔기로 하고 도시바메모리로 분사했다. 당초 지분 20%만 매각하려했지만 회사 정상화를 위해 50%, 100%까지 완전매각할 수 있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일단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흥행에는 성공했다. 지난달 29일 1차 입찰 결과  SK하이닉스·웨스턴디지털(WD)·훙하이정밀공업 등 한국·미국·대만의 10여 개사 업체가 참여했다. 이에 더해 미국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 사모펀드 실버레이크파트너스는 2조 엔(약 20조원) 규모의 인수액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M&A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곳은 애플·구글·아마존 등 미국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다. 특히 애플은 아이폰을 만들면서도 제조는 대만 업체인 폭스콘에 맡길 정도로 직접 제조에는 관심이 없는 기업이다.

올들어 삼성전자가 양산을 시작한 64기가비트(Gb)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중앙포토]

올들어 삼성전자가 양산을 시작한 64기가비트(Gb)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중앙포토]

AI·IoT·자율주행차까지 쓰임새 늘어

왜 미국 ICT기업들이 낸드플래시 메모리 제조 영역에 직접 뛰어들려할까. 사실 반도체 시장은 다른 산업에 비해 사이클이 짧다. 보통 3~4년을 주기로 불황과 호황을 오갔다. 2000년·2004년·2006년·2010년·2013년 반도체 가격이 상승했고, 이후에는 1~2년 씩 시장이 침체됐다. 이런 반도체 산업의 주기를 ‘실리콘 사이클’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최근 급부상한 기술분야 때문이다. 애플이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아이폰과 노트북PC ‘맥(Mac)’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 상당수를 자체 조달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차량용 반도체 칩까지 마음만 먹으면 공급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를 구동할 수 있는 고용량의 메모리 칩을 도요타의 적시생산방식(Just in Time)처럼 필요할때 받게된다. ‘애플카’와 애플의 차량용 SW ‘카플레이’, 도시바 반도체가 수직계열화된다는 논리다.

구글·아마존은 애플과는 이해관계가 약간 다르다. 이 두 기업은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에서 선두자리를 다투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데이터를 불러올 수 있는 클라우드 환경을 위해선 고용량의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도시바의 낸드플래시가 필요하다는게 구글·아마존닷컴의 논리다.

시장에선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수퍼사이클이 5년 길게는 10년까지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IC인사이츠는 올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853억달러(약 98조원)로 지난해보다 10.3% 증가하고 2021년에는 1099억달러(약 126조3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가트너는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매출 규모는 전년 대비 7.2% 증가하고, 메모리 반도체가 성장세를 견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10년, 공급이 수요 못 따를 것”

낙관적 배경의 근거는 고용량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반도체 공급은 몇몇 기업 위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D램의 경우 비보·오포·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대용량 메모리를 탑재한 고사양 제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갤럭시S8도 한국과 미국에는 4기가바이트(GB) 램을 사용했지만, 중국에선 6GB를 탑재한다. 화려한 그래픽을 많이 쓰는 게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메모리 용량을 대폭 확대하는 추세다. PC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침체에 빠질 것이라던 몇년 전까지의 예상과는 딴판이다.

그렇지만 현재 D램 공급은 한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3개 기업이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단번에 생산 물량을 확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게다가 반도체는 갈수록 정밀도가 높아지면서 이젠 생산라인 하나를 짓는 데만 10조원 이상이 들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다.

낸드플래시는 삼성이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현재 최고 수준 기술인 48단 3차원(3D) V-낸드플래시를 양산할 수 있는 업체는 2017년 4월 현재 삼성전자밖에 없다. 낸드플래시는 D램과 달리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도 저장한 자료가 손실되지 않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 소형 저장장치(SD카드)에 이어 하드디스크를 이을 차세대 저장장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까지 활용폭이 커지고 있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서버용 3D낸드에서 내고 있는 성과는 ‘넘버 원’이 아니라 ‘온리 원(Only One)’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재고 확보 경쟁 따른 일시적 공급부족”

그렇지만 반도체 수퍼사이클이 이미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도 있다. 장밋빛 시장 전망에 찬물을 끼얹은 곳은 글로벌 투자은행 UBS이다. UBS는 최근 “PC·스마트폰 업체들이 재고 확보에 나서면서 일시적으로 공급 부족 현상이 빚어졌다”며 “D램 시장은 올해 2분기부터 공급 과잉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영업이익이 내년에는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이 이미 정점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자국 반도체 업체들을 대상으로 10년간 1조위안(약 170조원)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대표적으로 칭화유니그룹은 지난해 말 우한에 3D 낸드플래시 공장을 착공했다. 2020년까지 총 240억달러(약 28조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이 공장에선 당장 내년 3월부터 낸드플래시 메모리가 쏟아져나올 예정이다. 시장분석업체 IHS의 월터 쿤 이사는 “양산 기술의 수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르면 2018년 말, 늦어도 2020년 전에 중국 칭화유니그룹이 공급량을 크게 늘릴 것”이라며 “중국이 세계 낸드 플래시 시장을 공급 과잉 상태로 몰아 넣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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