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다문화센터에 실제로 다문화는 없어 김치·한국어 전수 한국문화센터 불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26호 14면

난민 출신 욤비 토나 광주대 교수

욤비 교수는 “차별 탓에 한국에선 빌 게이츠도 전화를 여러 대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광주대]

욤비 교수는 “차별 탓에 한국에선 빌 게이츠도 전화를 여러 대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광주대]

욤비 토나(51) 광주대 기초교양과학부 교수는 한국에 정착해 성공한 마이그런트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부족국가 왕족 출신으로 킨샤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콩고 2차 내전 와중에 정권비리를 공개하려다 투옥됐고 탈출했다. 2002년 한국에 들어와 노동자로 일하면서 2008년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후 가족을 데려왔고 2013년 교수에 임용됐다. 난민권리네트워크 의장, 유엔 비정부연락사무소(NGLS) 위원으로도 일한다. 그를 광주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한국, 이방인에 대한 차별 많아 #같이 살기 위해 문화의 공존 필요 #이주민 자녀들 한국에 서운 #성장 후 사회갈등 ‘폭탄’ 우려

욤비 교수는 명석했고 한국어로도 유머가 넘쳤다. 그는 “한국 사회가 급속히 노령화하고 있다. 나는 아이를 낳으라는 한국(정부의) 말을 잘 듣는다”며 “아이가 다섯이고 한국에서 둘을 낳았다. 막내 가엘이 이제 한국 나이로 세 살이다. 이 정도면 나도 한국 사람 아니냐”고 웃어 보였다. 물론 그는 법적으로 F-2사증을 지닌 난민이며 한국인은 아니다.

한국 생활은 어떤가.

“거리에 다니다 보면 ‘야~ 진짜 새까매’ ‘흑형’이라고, 공장에서 일할 때 ‘흑인 힘 많아, 일 많이 해’ 이런 얘기를 듣곤 했다. 난 힘 별로 안 세다. 그러나 흑인은 힘이 센 걸로 돼 있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 계단으로 구를 수도 있다. 이제 한국에 너무 오래 살아서 이렇게 관심 받는 게 편해졌을 정도다. 외국 나가면 이상하다. 사람들이 나한테 무관심하니까.”
차별이 그리 심한가.

“한국이 단일민족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토종 한국인의 피부색이 똑같지 않다. 한국인은 출신을 따지자면 여러 곳일 거다. 그러나 외부인에 대한 차별은 많다. 결혼 이주자들과 상담을 하면 도망가고 싶다고 한다. 시어머니 문제, 피부색 차별 문제 등 여러 문제가 얽혔다. 뭔가 잘못돼 있다.”
정부는 많은 돈을 들여 다문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런 곳에 가면 ‘여기는 다문화센터입니다’ ‘우리는 다문화학교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다문화는 없다. 뭐가 있나. 외국인들이 한국말 배우고 김치 어떻게 담그는지 배운다. 쉽게 말해 한국문화센터다. 정말 죄송하지만 진짜 이상하다. 호주에서는 이주민들에게는 호주 문화를, 호주인들에게는 아랍 문화 등도 가르친다. 문화의 공존이 필요하다. 같이 살아야 한다. 한국은 복잡하다. 외국인이 한국인과 결혼하면 다문화로 쳐 주고 난민은 다문화가 아니고 비즈니스 하는 사람도 다문화는 아니라고 한다.”
난민들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다.

“이승만·김대중 전 대통령도 미국으로 망명한 난민이었다.”
한국에 온 지 6년 만에 난민 인정됐다. 왜 이리 오래 걸렸나.

“한국에서 난민 인정 절차가 길다. 법무부 난민센터에는 난민들 사진을 걸어 놨다. 그걸 보면 한국이 난민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난민 인정을 해주려 하지는 않는다. 한국은 1992년 유엔 난민법에 서명했다. 첫 난민 인정자는 2001년에야 나왔다. 여태까지 난민 인정자가 600명 정도다. 그러려면 난민법을 왜 만들었는가. 한국은 난민법을 통해 국제사회에 ‘우리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는 나라다’라고 쇼를 하는 것 같다. 한국은 종이(서류)로만 한다.” 
한국에서 모범 사례는 없나.

“법무부에서는 ‘한국에서 난민이 공장 노동자부터 교수까지 한다’고 광고한다. 그 교수가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나 욤비다. ‘욤비 교수를 봐라 난민들 잘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는 거다. 그러나 난민 인정자 600명 중 괜찮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은 나 하나다. 또 내가 정부로부터 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
다른 난민들 생활은 어떤가.

“98년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으로 온 사람이 2001년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첫 번째 인정자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 없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 2011년 이탈리아로 갔다. 한국에서도 힘들었지만 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있는 좋은 나라인데 왜 한국에서 난민 인정받고 이탈리아에 왔느냐고 하는 거다. 한국 생활이 어렵다고 하니 믿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은 그래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하는 등 이주민에게 선진적으로 대하는 것 아닌가.

“종이로는 그렇다. 한국에서 난민 인정자는 투표권이 없다. 정치도 안 된다. 난민들도 한국 사람과 똑같다. 자동차도 사야 한다. 휴대전화도 개설해야 한다. 그러나 법을 안 따져보고 그냥 피부색만 보고 외국인이라고 한다. 신분증 확인 안 한다.”
난민의 법적 지위는 한국인과 동일한데.

“맞다. 난민도 세금을 내고 자국민과 같은 지위를 받게 돼 있는데 그것 역시 종이로만 그렇다. 내가 인천에서 일자리 잃었을 때다. 한국인들이 받는 실업급여를 받으러 주민센터에 갔더니 ‘외국인은 안 된다’고 그랬다. 법무부에 물어보니 난민은 된다고 하고 주민센터는 안 된다고 한다. 법률 체계의 연결이 없다.”
휴대전화도 못 사는가.

“외국인은 휴대전화 두 개밖에 못 만든다. 우리 집은 전화 다섯 대가 필요하다. 아이들은 부모 이름으로 만드는 것이어서 총 4개밖에 못 만든다. 둘째 딸은 못 만들었다. 딸이 집에 늦게 오면 어디서 전화하는가. 그래서 통신회사 SK·LG·KT에 다 따졌다.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얘기했다. 그랬더니 오 마이 갓, 답이 뭐라고 나왔는지 아는가. ‘괜찮은 차별도 있다’는 거다. 이유는 외국인들이 돈이 없어서 휴대전화 신청을 많이 받아주면 어렵다는 거다. 형편이 어려우니 두 개만 받게 하는 괜찮은 차별이란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에 내 월급이 얼마인지 (내역을) 갖고 갔다. 그랬더니 거기서 미안하다면서 도와줄 테니 SNS에 써서 올리지 말아 달라더라. 그래서 이건 도와주는 게 아니고 법의 문제라고, 법을 지켜 달라 그랬다.”
한국인들에게 서운한가.

“한국인들이 외국인에게 ‘한국 좋아하냐’고 물어본다. 외국인들은 다 좋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외국인 대 외국인으로 만나면 실망이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 ‘폭탄’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아직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그렇게 여기지 않고 있다. 이 아이들이 더 크면 나쁜 생각이 나올 수 있다. ‘내가 왜 한국 사람이 아니야. 여기에서 태어나고 세금도 내는데 나보고 한국 사람 아니라고 하면 되나.’ 이런 아이들이 계속 나쁜 생각을 하면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
어떻게 바꿔야 하나.

“첫 번째가 국가 정책, 그 다음은 미디어, 세 번째가 교육이다. 특히 정책은 만들려면 잘 만들고 자신이 없으면 아예 없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특별취재팀 성호준·강기헌·박민제 기자, 조수영·나영인 인턴기자,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 윤광일 소장·김현숙 책임연구원·신혜선 책임연구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