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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한국’, 역동성이 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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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영욱한국금융연구원초빙연구위원

김영욱한국금융연구원초빙연구위원

들은 얘기다. 농장에서 일하던 두 사람이 떠나기로 했다. 한 사람은 뉴욕행, 다른 사람은 보스턴행 기차표를 샀다.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다. “뉴욕 사람은 인정이 없어 길을 가르쳐 주고도 돈을 받는데, 보스턴 사람은 거지한테도 인심이 후하다”는 말을 들었다. 두 사람은 행선지를 바꿨다. 뉴욕 표를 산 남자는 “일자리를 못 구해도 굶어죽진 않겠다”며 보스턴으로 틀었다. 다른 사람은 “길을 가르쳐 주고 돈을 받는다면 부자가 되겠다”며 뉴욕으로 바꿨다. 두 사람의 운명이 달라졌다. 보스턴에 간 사람은 일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어서 걸인에 안주했다. 뉴욕으로 간 남자는 돈을 벌 기회가 많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남들이 생각지 않던 화분 흙 판매, 간판 청소 대행업에 진출해 큰돈을 벌었다.

축 처진 한국 경제, 해법 없다는 비관 확산 #잃어버린 역동성 되살릴 대선후보 없나

이쯤 얘기한 후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라고 물으면 대부분 뉴욕으로 간 남자를 택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도전정신이 부럽단다. 위기를 기회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 성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기업가정신 말이다. 나라경제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역동적인 경제가 된다. 저성장·양극화·청년실업 등 우리 사회의 수많은 난제들이 풀린다. 우리 경제발전사가 그러했다. 도전하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고속 성장과 분배의 형평은 동시에 달성했다.

역동성은 성장 지상주의와 다르다. 성장은 역동성의 결과물이다. 역동성은 생태계의 복원이다. 가령 우리나라 기업 생태계의 문제는 소기업은 많고, 중견기업은 취약하고, 대기업은 희소하다는 거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소기업은 별로 없고, 대기업으로 크는 중견기업은 더 없어서다. 잃어버린 역동성을 살리는 기업 정책의 목적은 자명하다. 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크려고 노력하는 구조를 만드는 거다. 그렇다면 역동적인 대기업 정책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성장을 저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불공정 거래, 오너의 사익 편취, 일감 몰아주기는 근절해야 한다. 반면 승계 문제는 풀어줘야 한다. 승계는 오히려 역동성을 충만하게 만드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정책도 확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중소기업 정책은 시혜 일변도다. 중소기업들이 정부 지원에 안주하는 좀비 기업으로 전락한 이유다. 하지만 역동성에 초점을 둔 기업 정책이라면? 성공하기 위해 도전하는 중소기업만 지원한다. 방법은 여럿 있다. 창업 후 일정 기간만 지원하거나, 연구개발에 국한해 지원하는 방안 등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는 역동성의 상실 탓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는 축 처져 있다.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형국이다. 오죽하면 ‘잃어버린 일본’에 이어 ‘잃어버린 한국’이라고 할까. 저성장이 단적인 예다. 올해 성장률은 6년째 잠재성장률보다 낮고, 7년째 세계경제 성장률보다 낮다.

양극화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역동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들이다. 양극화 불만이 역동성 상실 때문이라니? 불평등 그 자체에 대한 불만보다 ‘도전할 기회가 없다’는 데 대한 불만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동성은 기회를 창출한다. 청년 창업자들이 몇 번이고 재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회적 약자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배려한다. 분열과 대립이 이토록 심해진 건 저성장과 양극화 심화 탓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갈등의 해결책 역시 역동성의 복원이다.

대선주자들의 공약이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역동성이 빠져 있다. 그러니 중소기업은 여전히 지원 대상이고, 재벌은 언제나 적폐의 산물이다. 청년일자리를 얘기하면서 대기업의 정규직 노조 개혁에는 입을 닫는다. 수명이 다한 낡은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는 역동성이 생기지 않는데도 대체로 외면한다. 복지도 지출 확대와 더불어 역동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재편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시혜 차원에 머물러 있다. 좋은 말은 다 갖다 쓰는데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 건 그래서다. 일본 경제를 한때 우리말로 ‘기신기신 경제’라고 불렀다. 역동성이 더 떨어지면 우리가 이렇게 된다.

김영욱 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