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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들은 한국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중앙일보

입력 2017.04.07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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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마이클 그린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선임부소장

마이클 그린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선임부소장

대한민국에는 ‘강대국들은 남북 통일에 반대한다’는 인식이 암암리에 퍼져 있는 것 같다. 역사책, 정치 담론,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강대국들이 한국을 분할했으며 분단 상태의 유지를 바란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사실일까.

미국 정책은 한국 주도 통일
일본은 반대서 찬성으로 돌아
중국은 남북한 ‘자주 통일’로
한·미 동맹 사라지길 희망해

20여 년 전 나는 미 외교협회(CFR)를 위해 한반도 미래에 대한 대형 태스크포스를 운영하며 일본·중국 관리들과 이 문제를 토론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시 5년여 동안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할 때에도 이 문제를 검토했다. 정부들은 좀처럼 한국 통일에 대한 속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나는 미국·중국·일본 측 인사들과 수백 시간 동안 토론한 결과 강대국들의 속내를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됐다.

물론 미국에도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트루먼 행정부 이래 미국의 정책은 서울에 의한 궁극적인 통일이다. 이 원칙이 흔들린 미 행정부는 없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한민국에 의한 통일이라는 원칙에 다른 조건들이 추가됐다. 첫째, 통일 한국에는 핵무기가 없어야 한다. 둘째, 통일 한국은 한·미 동맹의 지속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국제사회 전체가 통일 한국을 경제적·외교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미 행정부에는 북한의 붕괴와 한국에 의한 통일을 위한 전략 계획이 없다.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내다보고 김영삼 정부와 비상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하지만 북한의 붕괴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계획을 마련하지는 않았다.

사실 미국은 그 반대로 북·미 기본합의를 통해 북한 정권을 지탱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회의는 정권교체 전략의 효과를 연구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압력과 6자회담을 통한 관여정책을 선택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초기에 깊은 수준의 대북(對北) 관여정책을 약속했다가 포기했다. 북한의 2009년 핵실험 이후 잠시 정권교체를 검토했으나 리스크가 너무 많다는 판단 때문에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신속히 후퇴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새로운 접근법을 말하면서도 구체적인 정책은 아직 수립하지 않았다.

미국 의회에는 한반도의 민주적인 통일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가 있다. 하지만 정책결정자들에게는 통일의 성격 또한 중요하다. 북한이 전면적으로 붕괴하면 핵무기가 유출될 수 있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의도하지 않은 군사 충돌도 발생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북한의 핵 위협을 종식시키는 것이 위험을 감수할 만한 목표라고 주장한다. 요약하자면 미국에는 통일 원칙에 대한 강력한 초당적 지지가 있으며 북한의 급변 사태에 어떻게 대비할지에 대해 한·미 양국은 비상대책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한국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합의나 계획은 없다. 이는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통일 과정은 서울이 주도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 중국 관리들은 사상 최초로 통일을 지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하지만 중국 측이 구체적으로 어떤 표현을 쓰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베이징이 선호하는 것은 ‘자주적인 통일’이다. ‘자주적인 통일’은 평양과 서울이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이룩하는 통일이다. 중국은 또한 통일 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를 폐기할 것을 기대한다. 베이징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 통일은 중국이 힘을 축적할 때까지 먼 미래로 미루는 게 최선이다. 시간을 버는 가운데 한국을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로부터 이탈시키고 평양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물론 중국에서도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많은 중국 학자가 통일 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인 민주국가일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자유주의적인 중국 학자들은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베이징에 자유화 압력을 넣기 위해서다. 다른 중국인 전문가들은 개인적으로 통일이 조만간 이뤄지길 기대한다. 피곤하고 위험한 김정은 정권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희망하는 ‘자주적인 통일’은 본질적으로 중국이 그 과정과 결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일이다. 또한 암묵적으로 서울이 단독으로 주도하는 통일에 대한 반대가 내포돼 있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렇다.

일본의 입장은 변했다. 20여 년 전 일본 관료와 학자들은 통일 한국이 일본에 등을 돌릴 것으로 보고 통일을 꺼렸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의 대일(對日) 미사일·핵무기 위협 때문에 다수의 일본 관료와 학자들은 북한 정권의 종언이 북한의 위협과 일본인 피랍자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결론 내린 듯하다. 일본인 전략가들이 제시하는 주요한 통일의 조건은 통일 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자·언론인·정책결정자들은 강대국들이 통일에 반대한다는 가정을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 미국은 통일에 반대한 적이 없다. 일본의 입장은 바뀌었다. 중국이 선호하는 ‘자주적인 통일’ 또한 평양의 점증하는 도발 때문에 실험대에 올랐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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