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케이크에 레드 와인, 치즈 케이크는..? 술과 함께 디저트 먹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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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위크 취재차 3월에 들른 싱가포르는 역시 당당한 미식의 도시였다. ‘아시아의 멜팅팟’이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식문화가 뒤섞여 있을 뿐 아니라 국제회의가 많이 열리는 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 네 분야를 통틀어 말하는 서비스 산업)의 도시답게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현지 셰프들이 운영하는 수준 높은 식당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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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호커센터(푸드코트)에서 고급 파인 다이닝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식 문화가 발달해 있는 곳으로 디저트도 예외가 없다. 싱가포르 명물인 카야 토스트부터 영국 식민지 시절 영향을 받은 고급스러운 차와 다과 문화, 디저트를 코스로 내는 디저트 바(bar)까지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디저트 여왕'으로 불리는 재니스 웡(Janice Wong·34)은 무려 8코스 디저트를 내는 디저트 바를 열어 싱가포르 디저트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을 받는 젊은 셰프다. 프랑스 르 코르동 블루에서 요리 공부를 하고 그랜드 애커츠(Grant Achatz), 토마스 켈러(Thomas Keller),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e) 등 세계 최고의 페이스트리 셰프 밑에서 훈련을 받았다.

아시아 최고의 페이스트리 셰프로 꼽히는 재니스 웡. [사진 2am 디저트바]

아시아 최고의 페이스트리 셰프로 꼽히는 재니스 웡. [사진 2am 디저트바]

2007년 싱가포르의 홀랜드 빌리지 지역에 ‘2am 디저트바’를 열어 10년 넘게 운영해 오고 있다.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세계적인 미식 평가 순위인 ‘월드베스트 레스토랑 50’의 아시아 부문에서 ‘아시아 최고 페이스트리 셰프’로 선정되는 등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싱가포르에만 두 개의 분점이 있고, 2016년 홍콩과 도쿄에도 ‘2am 디저트 바’를 차례로 오픈 했다.

싱가포르 2am 디저트 바 내부. [사진 2am 디저트바]

싱가포르 2am 디저트 바 내부. [사진 2am 디저트바]

대단한 재니스 웡이나 2am 디저트바의 명성과는 달리 직접 찾은 2am 디저트 바는 차분했다. 홀랜드 빌리지는 싱가포르의 조용한 고급 주택 단지다. 싱가포르의 다운타운에 있지는 않지만, 저녁이 되면 아기자기한 노천카페와 감각적인 술집 등이 문을 열어 방문객을 맞는 반전이 있는 지역이다.

싱가포르 중심가인 오차드 로드에서 이곳을 가려면 자동차로 약 15분 정도 걸린다. [구글 지도]

싱가포르 중심가인 오차드 로드에서 이곳을 가려면 자동차로 약 15분 정도 걸린다. [구글 지도]

홀랜드 빌리지 한 쪽 건물 2층에 위치한 2am 디저트바는 간판도 조그맣고 밖에서는 건물 입구를 제대로 찾기 어려울 만큼 숨어 있다. 마치 아는 사람만 가는 비밀스러운 아지트 같은 모양새다. 이름에도 드러나듯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한다. 디저트 가게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다. 재니스 웡은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디저트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착안했다”며 “부담 없이 술과 함께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디저트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오픈했다”고 말했다.
가게는 전반적으로 어둡다. 심야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의 천국 같은 곳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일단 테이블이 인상적이다. 보기만 해도 달콤한 초콜릿으로 그림을 그린 뒤 유리를 얹었다. 물론 재니스 웡 셰프의 솜씨다.

테이블 바닥에 초콜릿으로 그림을 그렸다. 사진 유지연 기자

테이블 바닥에 초콜릿으로 그림을 그렸다. 사진 유지연 기자

이곳은 완벽하게 디저트의 천국이다. 디저트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8코스(68S$ 5만 4000원), 5코스(79S$), 3코스(49S$)가 준비되어 있다. 물론 단품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각 디저트마다 어울리는 술이 함께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인 ‘카시스 플럼’에는 일본 술인 ‘우메슈’를 곁들이고 따뜻한 티라미수에는 이탈리아의 레드 와인을 곁들이는 식이다.

시그니처 메뉴인 카시스 플럼. 카시스 얼음 돔에 엘더플라워 요거트 폼 등이 채워져 있다. [사진 2am 디저트바]

시그니처 메뉴인 카시스 플럼. 카시스 얼음 돔에 엘더플라워 요거트 폼 등이 채워져 있다. [사진 2am 디저트바]

12년 전 뉴욕에 들렀다가 술과 디저트를 조합해 먹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재니스 웡은 “디저트를 코스로 내고, 술과 함께 냄으로서 디저트를 하나의 이야기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며 “특히 디저트를 즐기는 중간 중간 술을 더하면 맛이 풍성해질 뿐 아니라 입 안의 감각이 보다 정밀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새로운 메뉴 '하나사쿠라'와 페어링한 '몽키47' 진 베이스의 칵테일. 사진 유지연 기자

새로운 메뉴 '하나사쿠라'와 페어링한 '몽키47' 진 베이스의 칵테일. 사진 유지연 기자

특별히 잘 어울리는 디저트와 술이 따로 있을까? 재니스 웡 셰프로부터 몇 가지 추천받은 조합은 치즈 케이크처럼 고소하고 약간 느끼한 디저트에는 상큼한 리슬링(청포도) 와인을, 진한 다크 초콜릿 케이크에는 녹진한 맛을 극대화시키는 레드 와인이나 위스키를 더한다. 상큼한 과일 소르베 스타일의 디저트에는 매실주 등 과일의 향이 풍부한 술을 곁들이면 맛의 조화가 좋다.
디저트 접시 하나하나도 뜯어볼수록 아름답다. 각 접시로도 완결된 이야기를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맛을 한 번에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신 바닐라와 통카 등 남성적인 재료는 그 재료끼리, 딸기나 복숭아, 라벤더 등 여성적인 재료는 그 재료끼리 조합해 조화로움을 살린다.

다크 초콜릿과 솔티드 카레멜이 조화로운 '초콜릿 H2O'. [사진 2am 디저트바]

다크 초콜릿과 솔티드 카레멜이 조화로운 '초콜릿 H2O'. [사진 2am 디저트바]

심하게 달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겉보기에 너무 달지 않을까 싶어 손이 멈칫했던 초콜릿 디저트는 오히려 은근한 단맛으로 입맛을 길들인다. 재니스 웡은 “단맛 농도를 조절해 너무 진하지 않게 구성한 다음 짠맛이나 신맛 등 다른 맛을 보완해서 넣는 것이 디저트를 끝까지 맛있게 즐길 수 있게 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최고의 페이스트리 셰프답게 동양적인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 또한 인상적이다. 일본의 말차나 한국의 밀감, 싱가포르의 판단 잎 등을 디저트에 활용한다. 얼마 전 제주에 방문했다가 만난 밀감과 카라향(남진해)의 맛에 반해 러시아에서 배워 온 꿀 케이크 위에 밀감 소스를 더해 메뉴를 만들기도 했다.

싱가포르의 판단 잎을 넣은 메뉴, 'SHADES OF GREEN' [사진 2am 디저트바]

싱가포르의 판단 잎을 넣은 메뉴, 'SHADES OF GREEN' [사진 2am 디저트바]

술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디저트로 미각의 호사를 누리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오전 11시부터 8코스 디저트를 즐기는 사람들로 꽉 차있다는 일본 도쿄 분점(도쿄는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영업한다)에 이어 서울에도 혹시 반가운 계획이 없는지 말이다. 한국도 마침 ‘작은 사치’트렌드가 일고 있으니 말이다. 재니스 웡은 "그렇지 않아도 많은 제안을 받고 있다"며 언젠가의 한국행 계획을 예고했다. 곧 한국에서도 따뜻한 티라미수에 이탈리아 레드 와인을 곁들여 먹는 페어링 열풍이 불지도 모르겠다. 분명한건, 요즘 유행하는‘단짠단짠(달게 먹고 연속으로 짜게 먹는)’보다 우리 혀를 즐겁게 해 줄 거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디저트의 여왕, 재니스 웡을 만나다 #2년 연속 아시아 최고 페이스트리 셰프로 꼽혀 #술과 디저트 페어링해내는 심야 디저트 바 탐방기 #싱가포르 이어 홍콩 도쿄에도 분점

싱가포르=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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