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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북한을 쳤어야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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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당신이 재임 중에 했던 결정 가운데 지금 가장 후회(regret)하는 게 뭡니까.”

전쟁 막은 결정을 클린턴은 “가장 후회” #대북 군사타격, 비현실적이라 낙관 말라

지난해 말 장소는 홍콩. 주인공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대형 금융회사 C사가 마련한 비공개 간담회였다. C사는 클린턴 재단의 오랜 스폰서. 당시 현장에 있던 관계자가 최근 전해준 클린턴의 답변 요지는 이랬다.

“1994년 6월 북한 영변 핵시설을 치려고 했습니다. 그걸 안 김영삼 대통령의 반발은 엄청났습니다. CIA도 ‘(남북) 양측에서 100만 명의 엄청난 희생이 생길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마지막 순간 난 포기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23년 전 이 결정은 요즘도 ‘대북 군사 옵션’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가 뒷받침하는 근거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어진 클린턴의 발언에 행사 참석자 모두 뜨악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죠. 그때 난 (군사 타격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 북한 상황을 보면 당시 (포기) 결정이 두고두고 짐으로 남아 있습니다.”

충격이다. 한반도 전쟁 위기를 막판에 모면하게 한 ‘현명한 판단’을 정작 당사자는 후회하고 있다니. 자세한 발언 배경을 듣고자 클린턴 측에 메일로 문의했지만 답신은 오지 않았다.

우연일까. 94년 당시 CIA 국장이었던 제임스 울시가 지난주 미 매체 ‘더힐’에 기고를 했다. 지난 대선 트럼프의 국가안보 고문이었다. 울시는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미국인의 90%를 죽일 수 있다”고 썼다. 그러곤 “미국은 핵무기를 포함해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북한을 선제타격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린턴 ‘후회’ 발언과 같은 주장이다.

‘94년 클린턴 팀’의 후회는 “군사 타격 가능성은 거의 0%”라 주장하는 우리 외교 팀의 주장과 대조적이다. 낙관론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 첫째, 북한의 엄청난 보복이 예상되는 만큼 한국이 반대하는 한 대북 선제타격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 둘째, 물리적으로 힘들다는 주장이다. ▶핵·미사일의 정확한 위치 파악이 힘들고 ▶이란과 달리 북한은 해킹으로 핵 관련 시스템을 차단하기 어렵고 ▶휴민트(북한 내 인적 네트워크)망이 무너져 있다는 이유다. 마지막은 ‘김정은 제거’를 위한 정밀타격 시의 리스크. 김정은이 제거되는 순간 핵무기를 차지하려는 세력 간 내전, 대규모 난민 발생 등 한반도 주변에 또 다른 혼란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위험을 제거하는 순간 몇 배의 위험이 닥친다는 이 역설적 옵션을 미국 스스로 택할 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세 가지 근거 모두 이성적이고 상식적이다. 하지만 정말 이성과 상식대로 이 세상이 굴러가느냐는 별개다. 그런 관점에서 주목되는 게 중국이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방중 직후 베이징에서 복수의 중국 고위 관리를 두루 접촉한 정통한 소식통은 “중국은 미국의 군사행동 옵션이 ‘북한에 보다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하라’는 블러핑(엄포)이 아닌 진짜 ‘저지를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난 경제(세컨더리 보이콧)로 하려 하나 안에선 더 강경하다”는 틸러슨의 말도 말이지만, 무엇보다 펜타곤(미 국방부)이 지난 한 달 동안 대북 선제타격을 집중 검토해 온 첩보가 중국에 전해졌기 때문이란 것이다. 모레부터 열리는 트럼프-시진핑 회담에서 어떤 물밑 거래가 수면 위로 부상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우리로선 G2가 북한 문제에 손잡는 구도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가 더 염두에 둬야 하는 건 ‘클린턴의 후회’가 어느 순간 ‘트럼프의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에이, 설마~”하며 이성과 상식만 외치는 방관자로 있다간 트럼프의 질주 본능에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미국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지난달 23일, 윤병세 외교장관)이라며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자랑할 때가 아니다. 조수석에서 나와 이제 운전대를 잡아야 할 때다. “그때 ‘클린턴의 후회’의 뜻을 좀 더 잘 새겨들을걸”이란 뒤늦은 ‘우리의 후회’가 나오지 않으려면 말이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