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영기의 시시각각

‘세월호 음모론’의 확산 구조

중앙일보

입력 2017.04.03 03:00

업데이트 2017.04.03 03:12

지면보기

종합 30면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의심의 기술은 대중과 정치인의 공동 작업으로 발전한다. 세월호를 가지고 가장 황당한 장난을 친 사람들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네티즌 수사대로 유명한 ‘자로’다. 자로는 지난해 말 최고의 상상력을 발휘해 8시간49분짜리 동영상 다큐를 만들었다.

대중과 정치인이 함께 만들어
이재명·박원순 생각 여전한가

그는 ‘세월호와 잠수함의 충돌 가능성’을 또렷하게 주장했다. 박 시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네티즌 자로가 오랜 인고의 시간 속에 찾은 진실에 우리는 답해야 합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2016년 12월 26일). 잠수함 충돌설은 세월호의 실체가 전면적으로 드러나 갈 곳을 잃었는데도 식지 않는다. 잠수함과 부딪쳤다면 세월호 몸체가 저렇게 유지될 수 없다.

“청해진 명의로 등록된 세월호의 실제 소유주는 누구일까? 나는 세월호가 국정원의 소유임을 확신한다”고 페이스북에 쓴 사람도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다(2014년 12월 28일). 국정원에 의한 고의 침몰설이 밑도 끝도 없이 떠돌 때 나온 글이다. 둘 다 대권을 바라보는 책임 있는 정치인이다.

어쩌면 2018년 서울시장 자리를 두고 격돌해야 할 사람들이다. 광장이나 네티즌, 평론가의 입에서 나오는 음모론에 일일이 반응할 순 없다. 그렇지만 박원순·이재명 시장에게만큼은 여전히 그때와 같은 생각인지 묻고 싶다. 말에 책임을 지는 게 공인의 도리 아니겠나. 그들은 국정의 기술을 키워야 한다. 의심의 기술을 갈고 닦아선 곤란하다.

한국의 음모론은 선진 일류다. ‘의심 기술’의 발전 속도는 4차 산업혁명보다 빠르다. 의심의 기술은 광장 민주주의와 함께 2017년 한국을 특징짓는 키워드가 될지 모른다. 세월호는 3년 만에 한국인의 눈앞에 드러났다. 처참하면서도 장엄했다. 세월호의 고마운 출현에서도 의혹은 터져 나왔다. 이렇게 늦게 나타나다니. 진실을 감추려고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막았나. 그렇게 빨리 떠오르다니.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급히 감춰야 할 게 있었나. 늦어도 음모요, 빨라도 의심이다. 도대체 선체 인양을 언제 하라는 말인가.

현재 목포신항에는 류찬열 코리아샐비지 회장이 세월호를 돌보고 있다. 류 회장은 상하이샐비지와 인양 입찰경쟁에서 탈락한 일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한국 업체가 맡았더라면 지금쯤 정치적으로 얼마나 휘둘리고 있겠느냐”고 했다. 의심의 토양에서 비즈니스는 자랄 수 없다. 정부의 인양예산 1000억원이 중국 업체로 빠져나간 건 상대적으로 작은 손실이다. 큰 손실은 한국의 전문 인력 수백 명이 축적할 수 있었을 선박 인양 노하우다.

유시민 작가는 음모론에 대해 “그 사람들이 나쁜 의도가 있어 지어냈다고 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뒤 벌어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다른 시나리오가 필요했다”고 주장한다(3월 30일 JTBC ‘썰전’). 유 작가의 말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궤변 같다. 나쁜 의도가 없어도 나쁜 결과를 낳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지옥으로 인도하는 길은 선의(善意)로 가득 차 있다’는 서양 속담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 더 이해할 수 없는 음모론에 빠진다는 설명도 납득하기 어렵다.

음모론을 직업처럼 퍼뜨리는 사람들은 음모라는 표현보다 ‘합리적 의심’이라는 근사한 말을 사용하곤 한다. 내가 보기엔 비합리적인 억측이다. 자기들끼리만 합리적 의심이라는 용어로 서로 격려하고 부추긴다. 이런 풍토에서 음모는 문화로 정착한다. 의심은 규범이 된다. 의혹의 제기는 어느새 미덕으로 칭송된다. 의심의 기술은 광장 민주주의를 어둡게 만들 수 있다.

음모론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새 음모론을 낳는다. 음모론이 세상의 햇빛에 노출되는 순간 사라진다는 말도 비현실적이다. 음모론이 무슨 곰팡이인가.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정부가 투명하지 않아 창궐한다는 ‘음모론 환경설’도 있다. 무책임하다. 음모론은 전염병이 아니다. 몸속의 암과 같다. 그 어떤 진실, 그 어떤 실체가 드러나도 무시해 버린다. 꿋꿋하게 스스로 번진다. 의심은 자체의 관성을 갖고 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