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까지 진격한 멧돼지 … 택시에 치여 ‘도심 로드킬’

중앙일보

입력 2017.04.03 02:02

업데이트 2017.04.0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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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여기 서울경찰청 앞인데요, 엄청나게 큰 멧돼지가 막 돌아다니고 있어요.” 서울 종로경찰서 상황실에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2일 오전 3시의 일이었다. 상황실 직원들이 출동 준비를 하는 동안 다른 3명의 신고자가 각각 광화문 일대인 ‘경희궁의 아침’ 아파트와 외교부 청사 앞, 세종대로에 멧돼지가 있다고 2~3분 간격으로 알렸다. 119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광화문 KT 본사 앞 세종대로에는 짙은 갈색 털에 몸 길이 1m쯤 되는 멧돼지 사체만 남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인왕산에서 내려와 신고 전화 루트대로 광화문까지 걸어온 것 같다. 목격자에 따르면 달려오던 택시가 멧돼지를 치고는 그대로 떠났다고 한다”고 말했다. 멧돼지 사체는 종로구청 청소행정과로 인계됐다. 도심 한복판인 광화문 일대에서 멧돼지가 목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1월 1일에는 서울 은평구 은평뉴타운에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소방서가 엽사를 동원해 이 멧돼지를 사살했다.

어제 새벽 “엄청 큰 게 나타나” 신고
도심 출몰 늘어 작년 119 출동 548건
“북한·인왕산 둘레길로 많이 내려와
주도권 다툼서 져 먹이 구하러 온 듯”
승용차 받혀 파손 땐 보험처리 가능
사체 발견 땐 손 대지 말고 신고해야

멧돼지가 서울 도심에 출현하는 일이 잦아졌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멧돼지 출몰 신고를 받고 119구조대가 출동한 횟수는 총 548회로 2011년의 43회보다 약 13배 늘었다. 북한산과 닿아 있는 종로구와 성북구·은평구 일대에서 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멧돼지가 도심에 출몰하는 빈도가 늘어난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석렬 멧돼지출현방지단 소속 엽사는 “멧돼지의 상위 포식자인 맹수들이 사라져 개체수 자체가 많다. 북한산과 인왕산 등지에 둘레길을 만들었는데 멧돼지가 이 길을 타고 도심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말했다. 이준상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현장대응단 담당은 “번식기인 가을철에 먹이를 구하러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이번 멧돼지는 주도권 다툼에서 밀려 산에서 먹이를 못 찾고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멧돼지의 도심 출현은 가을철인 9~11월에 절반가량 집중돼 있다.

◆시내에서 멧돼지를 발견하면?=도심에서 멧돼지와 마주쳤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멧돼지는 야생생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보호법)상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돼 있다. 서울시에서는 경찰이나 소방 당국 외에 사단법인인 멧돼지출현방지단이 신고에 따라 멧돼지를 잡도록 하고 있다.

시내로 내려온 멧돼지는 달리는 자동차 등을 보고 흥분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유동인구가 많은 시간대에 도심에 나타났다면 인명피해가 났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준상 담당은 “일반인은 조용히 몸을 숨기는 게 최선이다. 멧돼지를 흥분시키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로 멧돼지를 치거나 멧돼지 사체를 발견했을 때에도 고기나 가죽을 얻겠다는 욕심을 내선 안 된다. 야생생물보호법에 따라 동물 사체를 발견했을 때는 바로 119에 신고해야 한다. 119에서는 이를 구청으로 넘겨 구청에서 폐사 처리한다. 멧돼지와 부닥쳐 승용차가 파손된 경우엔 자차보험을 들었을 경우 대물보상 기준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다.

이준상 담당은 “서울시에서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펜스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펜스를 치기 어려운 지형이 많아 아직은 도입하지 않았다. 음식물 쓰레기를 노리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니 일반 가정에서도 이를 잘 관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나한·여성국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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