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도 은행계좌 만드는 시대

중앙일보

입력 2017.04.03 01:00

업데이트 2017.04.0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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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금요일 밤 12시에 야근을 마친 직장인 김동우(35·가명)씨는 내일 가야 할 결혼식 두 곳이 생각났다. 통장 잔액을 확인해 보니 이번 달 카드 대금이 많이 나가 쓸 돈이 부족했다. 김씨는 곧바로 케이뱅크 앱을 내려받았다. 신분증을 촬영하고 24시간 콜센터 상담원과 영상통화를 하자 약 10분 만에 계좌가 만들어졌다. 추가로 지문인증을 거쳤다. 연 5.5% 금리로 3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이 한밤중 개설됐다. 다음날 오전 예식장에 가는 길에 집 앞 GS25 편의점에서 현금카드 없이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입력만으로 돈을 찾았다. 못 가게 된 결혼식 축의금은 휴대전화 문자를 이용해 송금했다. 상대방 계좌번호를 물어볼 필요 없이 문자창에서 그대로 ‘#송금 50000’을 입력해 현금 5만원을 부쳤다.

내일 케이뱅크 출범, 인터넷 전문은행 서비스 시작
가입·접속 공인인증서 필요 없고 앱 다운받으면 OK
지점 운영비용 안 들어 대출 금리 낮고 예금 금리 높아
은산분리 장벽 해결 안 돼 추가 자금조달에 어려움

3일 공식 출범하는 국내 1호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 이용자의 가상 사례다. 케이뱅크는 일곱 번째 시중은행(1금융권)으로 첫발을 내딛지만 기존 은행과 달리 지점이 한 곳도 없다. 조회·송금뿐 아니라 계좌개설·예적금·대출 등 은행서비스 전반이 모바일 앱 한 개(케이뱅크은행)와 웹(www.kbanknow.com)에서 이뤄진다.

정해진 영업시간도 없다. 24시간 365일 내내 언제든 소비자가 원하는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은 “그동안 고객이 은행 ‘일’을 보기 위해 은행이 정한 룰에 따라야 했다면 케이뱅크는 시간·장소에 관계없이 고객이 자유롭게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뱅크 에브리웨어(Everywhere)’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다.

출범과 함께 선보인 상품들은 시중은행 대비 가격 경쟁력이 있다. 지점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껴 소비자에게 유리한 금리를 책정했다. 우선 대출 금리가 후하다. ‘직장인K 신용대출’의 최저금리가 연 2.73%로 주요 시중은행(3월 기준 3.61~4.75%)보다 1~2%포인트 낮다. 이번 달 빚을 잘 갚기만 하면 다음달 대출금리가 연 1%포인트 내려가는 ‘슬림K 중금리대출’도 있다. 최저 연 4.19%까지 낮출 수 있어 저축은행이나 P2P 대출에 비해 낮은 금리를 제공한다.

앞서 김씨 사례에 등장한 마이너스 통장(‘미니K 마이너스 통장’)은 대출 심사가 지문 인증만으로 이뤄진다. 연 5.5% 확정금리로 300만원부터 최대 500만원까지 빌려준다.

정기예금 금리가 최고 연 2%대인 점도 매력적이다. 최근 시중은행 정기예금(연1.3~1.6%)에서는 앞자리 숫자 2를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 친구와 동반 가입하거나 체크카드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와 달리 ‘코드K 정기예금’은 KT통신대리점과 GS25 편의점 앞 홍보물을 통해 우대금리용 쿠폰번호(코드)를 공개한다. 네이버페이 ‘이벤트/쿠폰’ 페이지, 티몬 ‘케이뱅크 0원 딜’에서도 코드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입금액은 최대 5000만원까지다. 수시입출식 통장(‘듀얼K 입출금통장’)도 기존 은행 정기예금 수준 금리를 준다. 한 달만 잔고를 유지하면 최대 연 1.2%다.

케이뱅크는 ‘정보통신기술(ITC)의 힘을 극대화한 100% 비대면 종합은행’이라는 타이틀에 맞춰 실생활에 편리한 서비스도 내놨다. 상대방 계좌번호를 몰라도 일반 문자메시지(SMS)로 송금하는 ‘퀵 송금’은 별도의 송금 앱이 필요없다. 해시태그처럼 ‘#송금’을 적고 숫자 금액을 입력해 문자로 보내면 된다. 수취인이 케이뱅크에 가입하지 않았어도 링크를 열고 본인 계좌번호를 입력해 돈을 받을 수 있다.

눈앞의 최우선 과제는 안정성 확보다. 인터넷 전문은행은 국내에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비대면 실명확인이나 지문인증, 24시간 고객센터 및 전산센터 등이 금융사고 없이 원활하게 운영될지가 미지수다. 옥성환 케이뱅크 경영기획본부장은 “광화문 사옥에 24시간 종합상황실을 구축해 고객 응대와 비상상황 대응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 고민은 올 연말부터 시작될 추가 자금 조달에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은산분리’ 장벽이 남아 있어 상황이 어렵다. 케이뱅크가 대출 장사를 계속 하기 위한 최소 요건(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는 데만 3년간 2000억~3000억원의 증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책임지고 돈을 댈 대주주가 없다. 현재 KT 지분율은 8%다. 우리은행·GS리테일을 비롯한 5개 주주가 10% 지분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 42%는 중소 스타트업 등 15곳이 지분투자 형식으로 참여했다.

현행 은행법은 산업자본이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을 4%만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KT나 카카오 같은 정보통신기술 기업이 주도하는 인터넷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의결권 있는 주식 보유 한도를 34~50%로 늘려 주자는 은행법 개정안(2건)과 특례법 제정안(3건)이 계류돼 있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은산분리가 완화되지 않는 이상 인터넷은행은 기존 은행에 크게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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