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자의 미모맛집] ⑫ 해장국? 술안주? 술고래들의 소울푸드

중앙일보

입력 2017.04.03 00:01

업데이트 2017.05.19 12:01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인 재첩국.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인 재첩국.

입이 있는 자라면 모두 한마디씩 거드는 계절, 봄이다. 봄은 맛의 계절이다. 때맞춰 피어나는 개나리·벚꽃·진달래처럼 봄 먹거리도 계절을 어기지 않고 찾아온다. 들에는 땅기운을 품은 산나물이 돋아나고, 바다에선 갯것의 살이 찬다. 바야흐로 산천은, 먹거리 천국이다.

경남 하동 재첩 전문 음식점 혜성식당
섬진강서 직접 잡은 재첩으로 국 끓여
푸르스름하고 뽀얀 국물에 술이 술술

섬진강을 품고 있는 경남 하동에서도 연일 꽃 소식과 함께 맛 소식이 들려온다. 섬진강의 맛을 품은 봄 식재료 중 하나로 민물조개 재첩이 있다. 지리산 남녘에서는 강에서 나는 조개라 해서 ‘갱(강)조개’라 부른다. 봄이 무르익으면 겨우내 강바닥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재첩이 얕은 모래톱으로 거처를 옮긴다. 모래톱에 재첩이 ‘비치면’ 강마을 사람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재첩을 잡으러 섬진강으로 향한다.

섬진강에 재첩잡이가 한창이다

섬진강에 재첩잡이가 한창이다

“하동에서는 강 모래톱을 두고 ‘조개등’이라고 불러요. 날이 따뜻해지면 모래 사이로 재첩이 보일 정도에요.”
하동에서 나고 자란 조상재(55)씨도 섬진강에 기대 살아가는 재첩 잡이 어민이다. 직접 잡은 재첩을 요리로 내놓는 혜성식당(055-883-6635)의 주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래왔던 것처럼 재래식으로 재첩을 일일이 수확한다. 대나무 끝에 부챗살 모양의 쇠갈퀴가 달린 일명 ‘거랭이’를 들고 강바닥을 훑는다. 거랭이를 강물에 헹구면 쇠갈퀴에 엄지손톱만한 조개만 덩그러니 남는다.

수확한 재첩은 해감한 후 가마솥에 넣고 삶는다. 재첩과 물을 1대1 비율로 맞춰 넣고 한소끔 끓이면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뽀얗고 푸르스름한 물이 우러나온다. 나무 주걱으로 가마솥을 휘휘 저으면 조개 알맹이가 패각에서 뚝뚝 떨어진다. 몇 차례 천으로 국물을 걸러내면 모래며 조개껍데기며 입에 씹힐 것 없이 매끈매끈한 국물이 남는다. 바로 이 국물이 하동 사람의 소울푸드 ‘재첩국’이다. 강에서 난 조개 재첩으로 끓인 국물은 쌉싸래하고 짭조름한 맛이 난다. 남해바다와 섬진강이 만나는 기수(汽水)에서 자라는 재첩 특유의 풋풋한 맛이다.

거랭이로 강바닥을 훑어 재첩을 수확한다

거랭이로 강바닥을 훑어 재첩을 수확한다

하동에는 식당 853곳이 있는데 그중 무려 138개 식당이 재첩국을 낸다. 혜성식당을 비롯해 대부분의 재첩 식당은 아침 일찍 문을 연다. 재첩국이 하동 사람 사이에 대대손손 전해지는 해장음식이라 아침부터 재첩국을 찾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상하게도 해장하러 온 술꾼은 재첩국을 주문하곤 또 술을 기울인다. 재첩국을 술안주로 반주를 마시면 술이 들어가도 취한 줄 모르고, 평소 주량보다 두세 배를 너끈히 마시게 하는 부작용(?)을 경험하게 될 터다. 하동에서는 그리해도 괜찮다. 또 재첩국을 마시면 되니까.

재첩은 3월부터 11월까지 수확할 수 있지만 혜성식당은 봄 재첩을 급속 냉동해뒀다가 연중 해동해서 쓴다. 겨울을 견딘 재첩이야말로 알이 꽉 차고 단백질이 풍부한 진짜배기 재첩이란다.

“어디서 잡느냐, 언제 잡느냐에 따라 재첩이 다 달라요. 상류에 사는 것은 패각색이 옅고, 하류 것은 거무튀튀합니다. 봄에 잡은 재첩이 제일 맛있어요. 여름에 산란하기 전까지 재첩이 몸을 불리거든요.”

혜성식당 재첩회무침.

혜성식당 재첩회무침.

혜성식당에서는 재첩국 말고도 재첩으로 만든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삶은 재첩 살만 따로 모아 초장에 찍어 먹는 재첩회무침, 재첩 살을 가득 넣고 부친 재첩전 등은 국만 먹기 심심할 때 곁들여 먹기 좋다. 재첩국 8000원. 재첩모둠정식 1인 1만5000원.

글=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사진=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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