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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칩만 심으면 몰랐던 외국어도 술술? 머스크의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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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AI 시대 열리나

29일 개봉한 영화 ‘공각기동대’에서 주인공 메이저 미라(스칼릿 조핸슨 분·원작에서 ‘구사나기 모토코 소령’)는 뇌 일부와 척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몸이 기계다. 그의 목 뒤엔 접속 단자 네 개가 있다. 여기 코드를 꽂으면 인간은 컴퓨터의 일부가 되고, 컴퓨터도 인간의 일부가 된다.

하버드대, 뇌에 전자그물망 주입 성공 #뇌서 나오는 모든 신호 감지 길 터 #인간 행동·사고 지도 만들 수 있어 #머스크, 바이오기업 ‘뉴럴링크’ 설립 #“AI 지배 벗어나는 길은 전자그물망” #뇌에 정보 입력, 뇌질환 치료 목표

하버드대, 뇌 손상 없이 전기자극 성공

뇌와 컴퓨터가 정보를 주고받는 이 영화의 내용을 일론 머스크(작은 사진) 테슬라모터스 최고경영자(CEO)가 현실로 구현하겠다고 나섰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머스크가 ‘뉴럴링크(Neuralink)’라는 회사를 설립했다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의학연구’ 업종 허가도 받았다. 전기차 양산에 이어 민간 우주여행, 화성 식민지 개척을 시도하는 머스크가 이번엔 ‘뇌+컴퓨터가 결합한 세계’를 꿈꾸는 것이다.

뉴럴링크는 ‘전자그물망(neural lace)’이란 기술에 주목한다. 액체 상태의 전자그물망을 뇌에 주입하면 특정 뇌 부위에서 액체가 최대 30배 크기의 그물처럼 펼쳐지는 기술이다. 이 그물망은 뇌세포들 사이에 자리 잡아 전기 신호·자극을 감지할 수 있다. 뇌에 일종의 인공지능(AI) 컴퓨터를 심겠다는 발상의 시작인 셈이다.

전자그물망은 하버드대 화학및화학생물학과의 리우지아 교수팀이 2015년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실제로 구현했다. 김대식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리우지아 교수팀의 논문은 기존 뇌 신호 감지 기술을 개선해 뇌 전체에서 발생하는 모든 신호를 동시에 인지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뇌서 감지된 신호 의미 알아내는 게 숙제

자료: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하버드대

자료: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하버드대

머스크도 이 논문에서 영감을 받아 뉴럴링크를 설립했다. 지난해 미국의 복스미디어가 주최한 ‘코드 콘퍼런스’에서 머스크는 AI 대책으로 전자그물망을 제시했다. 그는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면 인간은 AI가 시키는 대로 하는 ‘애완 고양이(house cat)’가 될 것”이라며 “전자그물망을 두뇌에 삽입해야 인간이 AI에 지배당하지 않고 공생한다”고 말했다.

전자그물망 프로젝트는 2015년 머스크가 설립한 ‘오픈 AI’와 맥을 같이한다. 오픈 AI는 머스크가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 리드 호프먼 링크트인 회장 등과 함께 설립한 비영리 AI 연구기관이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리코드에 따르면 오픈 AI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AI들끼리 의사소통하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로봇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오픈 AI와 전자그물망은 ‘인간과 AI의 공생’이란 관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자료: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하버드대

자료: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하버드대

뉴럴링크의 우선 목표는 뇌질환 문제 해결이다. 간질·우울증 등 만성 뇌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뇌 삽입물질이 뉴럴링크 최초의 제품이 될 것으로 외신은 전망한다. 나아가 뉴럴링크는 공각기동대처럼 컴퓨터와 뇌를 연결해 인간이 원하는 정보를 뇌에 입력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만약 뉴럴링크 기술이 성공한다면 인지력·사고력 등 특정 기능을 향상시키는 ‘뇌 미용성형수술’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일단 뇌의 특정 부위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단지 어떤 전기 신호가 어디에서 발생한다는 정도만 겨우 인지하는 수준에서 ‘뇌의 컴퓨터화’는 공상과학에 불과하다. 또 전기 자극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자그물망은 원하는 전기 자극을 뇌에 전달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리우지아 교수팀의 논문처럼 전기 자극을 용이하게 인지하는 기술이 발전해도 질병 치료로 즉각 이어지긴 어렵다. 한 뇌공학계 전문가는 “현재 기술이 외국인 1명의 언어를 녹음하는 수준이라면, 하버드대 연구진은 100명의 외국어를 녹음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이 외국어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인류는 여전히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유했다.

전문가 “아무리 빨라도 30년 이상 걸려”

하지만 길게 보면 머스크의 꿈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자연의 법칙을 어기거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뇌공학이 급진적으로 발달한다는 가정하에서도 30년 이상 걸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영식 한국뇌연구원 뇌질환연구부장은 “머스크가 전기차를 대량 생산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현실이 됐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뇌과학 연구를 효과적으로 결합한다면 의외로 이른 시간 안에 신세계가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뇌에 칩만 심으면 안 배운 외국어도 할 수 있고, 영화 ‘매트릭스’처럼 뇌에 매뉴얼 프로그램을 접속하면 헬기를 처음 타는 사람이 헬기 조종법을 익히는 세상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소아·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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