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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민주주의에 충실한 대통령을 기다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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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손병권중앙대 정치국제학과

손병권중앙대 정치국제학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국론 분열이 극도에 이르렀고, 앞으로 대선정국과 맞물려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탄핵에 찬성했지만 탄핵에 반대한 소수 국민은 여전히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어 사회적 통합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탄핵과 대선 정국 맞물리며 #국론분열로 갈라진 현 시점에 #절대 과제로 떠오른 사회통합 #공정성과 공공 담론 확대하고 #국회·국민 동반자로 생각하며 #소통하는 새 대통령 기다린다

탄핵정국 이후 분열된 사회의 통합은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역동적 변화가 제시하는 방향을 염두에 두고 진행돼야 한다. 필자는 탄핵심판 이후 사회 통합을 위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대강 공정성 제고, 공공성 담론의 확대, 쌍방향적 소통과 대화 등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는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 경제위기 이후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안전망의 지속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고용이 줄고 청년 실업이 증가하는 등 제한된 일자리를 두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 통합의 과제는 경쟁의 승자와 패자가 모두 수긍할 공정한 절차를 더욱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편 사회 통합은 사회 주변부의 약자를 포용하는 데 필요한 정부의 공약과 이에 따른 공적 재원의 할당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세력을 끌어안아야 하는 주장은 다수결주의와 함께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과 관련돼 있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소득 양극화의 해소는 효율성이나 최적화만의 논리로 풀기는 매우 어려우며 공공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사회 각 부문의 실험정신이 필요한 영역이다.

한편 탄핵의 와중에서 빚어진 다양한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열린 자세로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 통합이 결코 무원칙한 봉합이 돼서는 안 되지만, 또한 특정세력에 대한 배제의 논리로 변질돼서도 안 된다. 새로운 질서와 공감대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경주돼야 하며, 이러한 노력은 ‘국론 분열과 혼란의 종식, 화합과 치유’를 요청하면서 만장일치로 탄핵을 가결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정신과도 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통합의 방향을 두고 볼 때 우리가 40여 일 후 새로 선출할 대통령은 어떠한 대통령이 돼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차기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의 중요성을 엄중히 인식하고, 이를 지켜 나갈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성장제일주의·성과주의·효율지상주의 등 구시대의 문화적 압박감이 여전히 잔존해 있는 가운데 청와대에 입성하는 순간부터 대통령은 자신이 주도하는 정책 공약의 실현을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5년 단임제라는 우리 대통령제의 특수성과 연결돼 대통령은 종종 민주적 절차, 국민 의견 수렴, 헌법기관에 대한 존중, 국민의 알권리 등을 도외시하면서 목표 달성에 전력하곤 한다. 여기에 더해 선출되지도 감시되지도 않는 청와대 조직이 공익성을 망각하면서 ‘농단’을 자행할 경우 민주주의는 위축되고 대통령과 국민이 대립하는 위기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새로 당선되는 대통령은 이러한 유혹과 덫에서 벗어나 전직 대통령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과업지향형보다는 소통하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대통령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장관과 참모를 두어 그들로 하여금 국정의 일부분을 맡아 일하도록 위임하면 되는 것이지 본인이 모든 정책에 일일이 관여할 필요는 없다. 헌법이 부여한 인사권을 공정하게 활용해 유능한 인재를 내각에 임명해 국정을 운영하되, 대통령 자신은 국회와 대화하고 여론을 경청하면서 중요한 국정 현안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내리면 된다. 대통령 정책 실행의 골든타임은 각계각층과의 부단한 대화 속에서 자신의 정책 어젠다에 대한 광범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마련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지 여대야소의 국회나 선거 간 공백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차기 대통령은 현재 국회의 지형과 국민의 정당 지지를 염두에 두고 볼 때 야당과의 협치를 선택사항이 아닌 국정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협치라는 것이 알파고 몇 대를 연결해도 그 수순이 쉽게 나오지 않을 어려운 일이겠지만 탄핵 이후의 정치 지형에서 새 정부의 국정과제 해결을 위해서는 야당과의 대화와 협력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협치의 형식은 정책 대화, 정책 연합, 내각의 공유에 이르는 다양한 대안 가운데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철학이나 야당과의 협력 유지 수준에 따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협치를 위해 청와대가 국회의장실이나 야당 대표 사무실 옆에 있을 필요는 없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국회와 야당을 귀찮고 발목 잡는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정의 동반자나 대화 상대로 생각하는 대통령의 인식 전환이라고 하겠다.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