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 재무부가 한국을 환율조작국(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23일 말했다. 서울시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이주열 “가능성 배제 못해” 입장 바꿔
이 총재는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보면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높지 않고 지정되지 말아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경계감을 드러났다.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작다”고 단언했던 지난달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현황 보고 때와는 달라진 어조다. 미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주요 교역 상대국의 환율정책 보고서’를 작성해 국회에 제출한다. 여기엔 각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 외환시장 개입 수준을 따져 심층분석대상국, 감시대상국으로 명시한다. 한국은 현재 감시대상국으로 지정돼 있다. 환율조작국에 해당하는 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의 실질적인 무역 제재가 이어진다.
이 총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미국 측의 입장을 귀담아들어 보니 환율정책의 투명성을 특히 강조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며 “만약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다면 양자협의 를 통해 이른 시일 안에 해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 안정화 차원에서 최소한의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보복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이 총재는 “여행·숙박업 등 관광 관련 업종의 매출과 관련 업종의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사드 보복 조치에 따른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현 2.5%) 하향 조정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 경제전망을 다시 점검할 때 이런 무역 제한조치의 영향을 파악해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가계부채가 불어나는 주 원인이었다는 비판에 대해 이 총재는 “저성장 고착화, 세월호 참사 등 당시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당연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대신 “가계부채가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 아니냐는 경계감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