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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끌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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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마트 진열대에 있는 과자를 집어 든다. 하나둘 부수기 시작한다. 매장을 잠시 돌더니 라면 봉지를 찢고, 주스 병뚜껑에 껌을 붙이고 다시 제자리에 놔둔다. 훼손한 제품들 모두 한국 브랜드다. 매장 역시 롯데마트다. 일명 사드 복수 영상이다.

사드 갈등을 계기로 중국의 '관종'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관종이란 관심 종자의 줄임말로, 특이하고 괴상한 행동을 통해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게 이들의 특징이다. 심지어 목숨까지 걸 정도다.

특히 사드와 같은 전 사회적 이슈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타깃이다. 관종들은 우리나라를 포함 전 세계 모든 곳에 존재한다.

중국 사드 보복…도 넘은 반한 감정 확산

그런데 중국에는 관종들이 유독 많다. 단순히 인구가 많기 때문이 아니다. 중국에는 일찍부터 관종을 소비하고 다시 생산해내는 꽤 체계적인 시장이 자리 잡아왔다. 관종을 대하는 미디어의 태도도 사뭇 진지하다.

우리가 관심이 없었을 뿐, 중국 관종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관종 문화를 통해 중국 사회의 일면을 볼 수 있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말한다.

관종의 역사

왕홍. 중국의 인터넷 스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터넷을 뜻하는 왕뤄(網絡)와 유명인을 뜻하는 홍런(紅人)의 합성어다.

그런데 여기서 '홍런'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는 단어다(중국 화남이공대학 신문전파학원 미학과 보고서). 제도권에서 정상적인 방식으로 유명해진 사람보다는, 소란이나 물의를 통해 이름을 알린 일반인을 의미한다. 왕홍을 우리말로 치면 '인터넷 관종'인 셈이다.

왕홍은 2000년대 초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 초창기 왕홍들의 특징은 '성(性)'을 다뤘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터넷에 자신의 성생활을 공개하거나, 노골적인 나체 사진을 올리며 사회 전반에 충격을 안겼다. 중국 언론은 이들의 얘기를 대서특필하며 왕흥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가 됐던 '섹스일기'의 저자 무즈메이(木子美)와 주잉칭통(竹影靑瞳, 자신의 나체 사진 유포) 등이 당시의 대표적인 왕홍들이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일명 '허세' 왕홍들이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호화, 방탕한 생활을 네티즌들에게 생중계했다. 침대에 돈뭉치를 깔아 놓는다거나, 수억원짜리 스포츠카를 자랑하는 식이었다.

때마침 웨이보 등 SNS가 인기를 끌면서 수백만 명의 네티즌들이 이 왕홍들의 소식을 실어 날랐다. SNS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사회'에서 이들은 주인공이자, 연예인 뺨치는 유명인이 됐다. 큰 파장이 일자 관영 매체들까지 나서 "과도한 물질 만능 주의를 조장한다"고 우려를 나타낼 정도였다.

이때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궈메이메이(郭美美)'사건이다.  당시 20세였던 궈메이메이는 자신의 스포츠카와, 명품 핸드백 등 사치품 사진을 SNS에 올리며 관심을 모았다. 당시 팔로워 수가 1070만 명에 육박했다. 문제는 그가 자신을 적십자회 고위 간부라 소개한 것이었다. 중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경찰 조사를 통해 궈메이메이가 직업을 사칭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 여파로 그달 중국 적십자 기부금이 반토막 나기도 했다. 궈메이메이는 '중국의 된장녀'로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됐다.

2010년에 들어서는 유쿠, 투더우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사진과 텍스트에 머물러 있던 왕홍들이 대거 영상들을 찍어올리기 시작했다. 카메라, 스마트폰 한 대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왕홍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관종을 소비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자신보다 더한 '놈'이 나타나면 금세 대중에게 잊힐 수밖에 없는 것. 자연히 관종들의 수위가 높아지고, 콘텐츠가 다양화됐다. 동시에 최신 이슈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관종 행동을 하는 '청러덴(?熱點, 이슈에 빌붙다)'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예를 들어 사드와 같은 사회적 이슈가 터지면, 경쟁적으로 관련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식이다.

이를 두고 중국의 한 커뮤니케이션학 전문가는 "과거에는 왕홍들에게도 당시 미디어를 반영하는 일정한 이슈와 패턴이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관심만 끌 수 있다면 모든 방법들이 동원되는 '카오스'와 같은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관종 산업의 탄생

2015, 2016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관종 문화는 전대미문의 변혁을 맞는다. 그동안 마이너 문화이자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까지 치부되어 온 왕홍들이 '자본'과 만나 하나의 거대한 산업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계기는 스마트폰을 통한 1인 방송 서비스의 보급이었다. 단순히 영상, 사진을 올리는데 만족해야 했던 왕홍들이 자신만의 방송 채널을 갖게 된 것이다. 대중들과의 쌍방향 소통도 가능해졌다. 말 그대로 왕홍들이 한바탕 제대로 뛰어놀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카테고리도 단순한 이슈 몰이에서 패션, 엔터, 전문지식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수십만 명의 동시 시청자와 수백만 명의 팬덤을 구축한 스타 왕홍들이 잇따라 출현했다.

중국 자본이 왕홍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한 이유다. 인터넷 1인 방송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왕홍들의 영향력은 커졌고, 이를 비즈니스 모델로 바꾸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왕홍들이 방송에 입고 나온 옷, 소개한 화장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유명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왕홍 모시기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왕홍을 아예 직업으로 선택하는 젊은이들도 크게 늘었다. 왕홍에 대한 인식이 180도 바뀐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파피장(papi醬)이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남녀 문제, 직장문제 등에 대한 '썰'을 재밌게 풀어낸 파피장의 1인 방송 중간 광고가 39억원에 낙찰됐다. 현지 언론들은 파피장의 몸값이 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파피장의 웨이보 팔로워는 약 1500만 명이다.

관종을 소비한다

인터넷 스타들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미국의 유튜브 스타나 우리나라의 아프리카 TV BJ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중국처럼 단기간만에 하나의 거대하고 체계적인 산업 생태계를 이룬 경우는 없었다. 2016년 말 중국 왕홍시장의 규모는 17조원에 육박한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중국의 미디어와 대중들이 관종을 소비해 온 방식에 주목한다.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사회 환경과 미디어 기능으로 인해, 다른 국가에 비해 관종들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가 발달해 왔다는 분석이다.

엘린 세테르 오슬로 대학교수에 따르면, 중국 언론들은 민감한 쟁점을 다룰 때 '개인'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쓴다. 즉 언론이 특정 개인이 처한 상황을 이용해 그 기저의 사회 현상을 다룬다는 설명이다. 당국의 통제 속에서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지 않은 분위기 때문이다.

엘린 교수의 말대로 라면, 중국 미디어들은 90년대 말 무즈메이라는 관종을 소개하고 비판하는 방식을 통해 중국 사회의 성문제를 이슈화했다. 또한 SNS에 돈자랑을 하는 관종들을 전면에 배치하면서 과도한 물질 만능 주의를 공론화 한 것이다. 이처럼 특정 '인물'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사회 이슈 소비하는 데 언론과 대중 모두 익숙해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 "1990년대 이후 중국 언론은 보조금 삭감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운영되기 시작했다"며 "판매 부수를 늘리고 시청률을 올리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정치적 위험이 적은 특정 인물을 부각시키는 길을 선택해 왔다"고 설명한다.

위샤 화중사범대학 인문사회과학원 박사의 의견도 비슷하다. 그는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사회 현상 자체보다는 사람 얘기에 열광해 왔다"며 "과거에는 '존경'을 매개로 한 영웅이, 90년대에는 '애정'을 매개로 한 대중스타들이, 최근에는 '오락성'을 매개로 한 일반인이 대중들이 소비하는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미학적인 관점에서 그 배경을 찾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들은 중국의 미디어와 대중이 다른 문화권보다 '추한' 이미지(잔인하고, 징그럽고, 선정적인)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고 진단한다. 이로 인해 초기 왕홍들이 생산해 낸 조악한 콘텐츠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중국 포털 사이트에서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금방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화남이공대학 신문전파학원 연구팀은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엘리트 지배 체계를 전복하고자 하는 욕구를 저속하고 추한 소재들을 통해 해소해 왔다"며 "왕홍은 중국 사회에서 받들어지는 고귀함, 아름다움, 이성적인 이미지에 대한 안티테제(특정한 긍정적 주장에 대한 특정한 부정적 주장)로 소비돼 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특히 누군가가 상업적 가치와 유명세를 얻기 위해 자신의 존엄을 팔아넘기는 것을 보면서 대중들은 일종의 희열을 느껴왔다"고 분석했다.

관종을 소비하는 대중의 입장에서 보려는 시도도 있다. 중국의 한 사회학 전문가는 "최근 왕홍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70~90년대 출생자들로, 경제 발전 속에서 균등한 기회를 못 누리고, 자신의 청춘이 참혹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며 "이들에게 왕홍은 자신들만 이해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비주류 문화로 주목을 받아 왔다"고 진단했다.

차이나랩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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