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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한국이 북한을 앞섰던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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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병연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병연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북한 경제와 관련해서 바로잡아야 할 상식 하나는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한국이 북한을 앞지른 때가 1974년이라는 것이다. 이는 오류다. 사회주의 통계는 과장된 것이 많다. 김병연·김석진·이근이 거품 통계를 수정해 북한의 성장률을 다시 추정한 결과 한국은 이미 68년에 북한보다 잘살기 시작했다. 이 추정치는 김일성 스스로가 65년에 행한 연설에서 ‘최근 수년 동안 북한의 1인당 소득이 증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던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

남북 경제 격차는 리더십의 차이 #남한이 수출진흥확대회의 하면 #북한은 현지지도에 치중했다 #능력주의와 개방적이던 남한이 #왜 요즘 북한처럼 퇴보해 #충성심만 따지는지 의문이다

  68년부터 한국과 북한의 운명이 엇갈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리더십 차이였다. 한국은 시장경제제도를 채택했다. 그러나 저개발국에서는 시장제도가 잘 작동하기 어렵다. 재산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고, 신뢰 부족으로 거래가 성립되기 어려우며, 정보가 부족해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일쑤다. 또 부패가 심한 터라 기업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이 문제는 시장 스스로가 풀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정치적 리더십이 이 공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진흥회의를 통해 시장제도가 작동하도록 불을 붙였다. 62년에 만든 이 회의체를 65년부터는 수출진흥확대회의로 개편해 대통령이 직접 월례회의를 주재했다. 79년까지 열린 152차례의 회의 중 그가 불참한 경우는 다섯 번에 불과했다. 이 회의는 수출 기업의 애로 사항을 해결하는 일종의 ‘원스톱’ 정책회의였다. 기업의 고충을 듣고 정부는 정책을 입안했으며 필요한 경우 회의석상에서 대통령이 직접 지시해 문제를 해결했다.

  수출진흥확대회의는 한국이 개방성과 효율성을 기초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수출을 통해 성장을 도모하는 동시에 당시로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장애 요인을 해결한 것이다. 자본이 부족했던 한국은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 재투자하고 양질의 더 많은 제품을 수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경제는 가파르게 성장했다. 수출 목표를 달성한 기업인에게는 상과 혜택이 주어졌고 이에 기여한 관료는 승진할 수 있었다. 즉 능력주의(meritocracy)가 잘 작동한 것이다.

중앙시평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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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김일성은 현지지도를 택했다. 50년대 후반부터 일상화됐던 현지지도는 말 그대로 김일성이 기업이나 기관에 직접 가서 지시하는 방식이었다. 기업 운영 원칙뿐만 아니라 생산 방식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포함됐다. 현지지도가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문제를 실제적으로 풀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상화였다. 현지지도를 받는 기업에 원자재나 현금을 주고 그 때문에 생산량이 증가한 것을 수령님의 위대한 지도 덕분이라고 선전하는 식이었다.

  북한의 김씨 일가는 현지지도로 매우 바빴다. 김일성은 이틀에 한 번꼴로 했으며 연평균 420개의 기업이나 기관을 방문했다. 김정일도 그랬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이 김일성을 보좌해 동행한 것을 포함해 2002년까지 현지지도로 다닌 거리가 지구를 11바퀴 돈 것과 맞먹는다며 그 노력을 칭송했다. 북한의 공식 성명에 따르면 김정일이 죽은 이유도 현지지도로 인한 과로사다. 김정은은 자기 아버지보다 현지지도를 더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수산물 기업을 방문해 물고기를 더 잡아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북한산 눈썹 화장품은 하품만 해도 번져서 눈이 ‘너구리’ 같이 된다며 질책하는 장면은 한 편의 코미디다.

  현지지도는 북한이 최고 권력자 한 사람을 위해 움직이는 폐쇄적인 시스템임을 잘 보여준다. 그 시스템은 능력주의가 아니라 충성주의에 기초한 것이다. 또한 우상화를 위한 보여주기 식으로 막대한 자원을 낭비하는 비효율적인 제도다. 현지지도는 경제 성장과 무관하다. 통계 분석 결과에서도 현지지도를 많이 간 산업과 그 산업의 성장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다. 이런 나라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한국의 거버넌스가 북한처럼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능력보다 자신의 뜻만 따르는, 배신하지 않을 사람을 임용해 폐쇄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그 결과 자신의 아버지가 세운 능력주의를 스스로 파괴했다. 이전 정부에서도 코드 인사, 충성도 위주의 인선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언제부턴가 대통령은 최고의 전문가보다 최고로 충성하는 심복을 찾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은 능력주의와 개방성, 효율성 면에서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새 정부는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까. 대통령 후보의 캠프 내에서 충성 경쟁이 붙고 새 정부가 시작한 이후에도 충성도 위주로 인선을 한다면 한국은 마지막 결정타를 맞는 셈이다. 그 충성주의의 피해를 고스란히 볼 국민들이 대통령 후보 진영의 캠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음 대통령은 어떻게 인선하는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