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에서 원수되는 대선 경선 전쟁

중앙일보

입력 2017.03.22 17:33

업데이트 2017.03.22 18:09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 이제 잊어버립시다. 하루아침에 잊을 수가 없다면 며칠 몇날이 걸려서라도 잊읍시다.”

2007년 8월 20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경선 결과 승복연설에서 했던 말이다. 박 후보의 연설은 당시 '정치사에 기록될 명연설'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경선 이후 실제 상황은 달랐다. 대선 경선에서 경쟁하다 결국에는 원수가 되는 질곡이 한국 정당사에서 반복됐기 때문이다.

박근혜·이명박 후보 진영은 당시 경선에서 서로 치명적인 약점인 ‘최태민 목사 의혹’과 ‘도곡동 땅 및 BBK 차명보유 의혹’ 제기를 주고 받으며 본선 같은 네거티브 전쟁을 치뤘다. 법적인 고소ㆍ고발전도 벌였다. 이명박 후보는 그 결과 12월 대선 직전까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에 의해 수사를 받았고 당선자 신분으로도 BBK 특검 수사를 받았다. 이 때의 앙금이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친이계의 친박계에 대한 공천 학살 등으로 이어졌다. 많은 전문가들이 "2007년 대선 경선 후유증이 보수 세력 내부의 10년 계파전쟁을 낳았고 결국 새누리당이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으로 분당하는 사태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정당사에서 대선 경선의 후유증이 부각된 건 1992년 5월 민주자유당 경선이 처음이었다. 당시 김영삼 후보에 패했던 이종찬 후보가 "불공정 경선"이라며 탈당해 새한국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 5년 후 1997년 7월 21일 신한국당 9룡(龍) 경선에서도 이회창 후보에 패한 이인제 후보가 54일 만에 불복·탈당한 후 국민신당 후보로 출마했다.

또 2002년 4월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선 당초 유력 주자로 꼽혔던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역전당한 후 같은 해 12월 탈당해 자민련으로 떠났다. 2012년 민주당 모바일 국민경선에선 당 대표 출신의 손학규 후보가 당시 정치 신인이었던 문재인 후보에게 득표율 22.2% 대 56.5%로 패한 후 정계를 은퇴했다.

손 후보는 결국 당시 쌓인 양금으로 인해 올초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 대선 경선에 나섰다.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현재 민주당 문재인ㆍ안희정 후보도 같은 뿌리에도 불구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한 것은 한 쪽이 대통령이 되면 권력을 독점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라며 “내년에는 지방선거, 2020년에는 총선이 있어 대선 이후 친문과 친안 캠프가 민주당 양대 계파로 분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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