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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차 만들고 동물 해부 척척 … 창의력·자립심 키워주는 ‘숨요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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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원주 치악고 자기주도학습 현장

올해 첫 ‘숨요일’인 지난 8일 원주 치악고 학생들이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해 안내문을 보고 있다. 치악고는 2015년 3월부터 숨요일을 운영 중이다. [사진 박진호 기자]

올해 첫 ‘숨요일’인 지난 8일 원주 치악고 학생들이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해 안내문을 보고 있다. 치악고는 2015년 3월부터 숨요일을 운영 중이다. [사진 박진호 기자]

강원도 원주 치악고 3학년 이찬영(18)군은 매주 수요일 5교시 수업이 끝나면 기술실로 향한다. 이군은 그곳에서 공학 계열 대학진학을 꿈꾸는 ‘이노베이션’ 동아리 친구들과 모형 태양광 자동차를 만든다. 오는 10월에 열리는 모형 태양광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보충수업·야자 없애고 동아리활동 #진로 따른 자율 탐구, 경쟁력 키워 #올해 졸업생 70% 수시로 대학 진학 #강원교육청, 숨요일 도내 전체 확대

입학과 동시에 동아리에 가입한 이군은 친구들과 함께 만든 자동차가 3대나 된다. 이군은 가로·세로 30㎝, 높이 20㎝ 크기의 자동차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다. 리모컨으로 조작이 가능한 자동차를 만드는 데는 5개월가량이 걸린다. 이군은 지난해 10월 충북 청주시에서 열린 ‘제16회 모형 태양광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해 준우수상과 디자인상을 받았다. 이군은 자동차를 만들면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재료에 따른 바퀴의 접지력과 속도에 관한 연구’ 논문도 쓰고 있다.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다는 이군은 “매주 수요일엔 보충학습과 야간자율학습이 없어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다”며 “이런 활동이 수시입학에 중요한 생활기록부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치악고는 2015년 3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숨요일(수요일+쉼)’을 운영 중이다. 숨요일엔 보충학습과 야간자율학습이 없다. 그 대신 자유롭게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다.

지난 8일 오후 2시20분 5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자 1000여명의 학생이 줄지어 실내 체육관으로 향했다. 이날은 개학 이후 첫 숨요일이 있는 날이다. 체육관에선 2~3학년 학생들이 신입 동아리 회원모집을 위한 홍보를 하고 있었다. 이 학교엔 인문·사회·교육·자연·공학·예체능·청소년 등 총 7개 계열의 동아리 55개가 있다. 의사와 간호사, 법의학자를 꿈꾸는 학생이 모인 ‘굿닥터’, 경찰을 꿈꾸는 ‘CIA’, 직업을 탐구하는 ‘굿잡’ 등이다.

간호사가 꿈인 2학년 이서은(17)양도 숨요일엔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굿닥터’ 동아리 친구들이 모이는 교실로 향한다. 교실에 모인 친구들과 의학 관련 토론을 하고, 해부대상을 결정해 실행에 옮긴다. 지난해엔 개구리와 쥐, 소 눈, 돼지 허파 등을 해부했다. 올해는 돼지 심장과 채소에서 DNA를 추출하는 실험을 할 예정이다.

숨요일 도입 당시엔 보충학습과 야간자율학습이 사라지자 불안해하는 학생·학부모가 많았다. 하지만 창의력 향상과 자기주도학습 효과가 나타나자 학부모들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 학교는 2017학년도 대입 결과 졸업생 432명 중 70%인 300여명이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교사들도 숨요일엔 아이들과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수업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교사들은 한 달에 한 차례씩 숨요일에 ‘교과수업연구회’와 ‘학년수업연구회’를 연다. 교과수업연구회의 경우 예컨대 한 국어 교사가 숨요일에 수업을 진행하면 나머지 국어 교사들이 수업에 들어가 수업 방식과 아이들의 반응, 변화를 관찰한다. 수업이 끝난 뒤엔 교사들이 모여 수업 결과를 놓고 토론을 진행한다. 정재홍(58)교감은 “과거의 교육은 교사 중심 교육이었다. 하지만 교사가 아무리 가르쳐도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배움이 일어나는 지를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원도교육청은 숨요일을 2년간 운영한 치악고가 좋은 성과를 거두자 강원지역 117개 고등학교에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강원지역 고등학교에서는 올해부터 매주 수요일엔 보충학습과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는다. 다만 야간자율학습 등을 원하는 학생들이 있는 학교의 경우 자율적으로 운영 할 수 있다.

원주=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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