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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만난 사람] 청바지·하이힐에 어울리는 생활 한복, 52개국에 나가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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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우리옷 전도사’ 황이슬 손짱 대표 

‘한복 전도사’를 자처하는 황이슬 대표는 ‘한복 차림의 1000가지 행동 도전’을 실천 중이며 저변 확대를 위해 한복 토크쇼와 제작 방법 등을 알려주는 한복 클래스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 손짱]

‘한복 전도사’를 자처하는 황이슬 대표는 ‘한복 차림의 1000가지 행동 도전’을 실천 중이며 저변 확대를 위해 한복 토크쇼와 제작 방법 등을 알려주는 한복 클래스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 손짱]

두루마기를 모티브로 제작한 코트, 코듀로이(누빈 것처럼 골이 지게 짠 우단과 비슷한 직물) 소재의 저고리, 리버서블(양면) 허리치마….

코듀로이 저고리, 두루마기 코트 등 #대학 졸업 뒤 7년 만에 15억원 매출 #한복 입고 삼겹살 먹고, 클럽 가고 #1000가지 도전 SNS에 올리며 인기 #토크쇼·콘서트 열며 ‘생태계’ 확산 #“한복처럼 톡 튀고 매력적인 옷 없죠”

모두 생활한복 전문 기업 손짱의 황이슬(31) 대표가 고안하고 만든 신개념 한복이다. 블라우스나 티셔츠, 청바지와 함께 입어도 잘 어울릴 만큼 현대적이고 멋스럽다. 기업명 ‘손짱’은 ‘손재주가 짱’이란 의미다. 황이슬 대표는 수천 가지 한복 모티브 중에 깃과 동정, 고름 등 지극히 한국적인 특징을 차용한다. 여기에 최신 패션 트렌드나 관심이 가는 사회적 이슈, 그때그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디자인에 녹여낸다. 

그는 “패션의 본질적인 욕망은 예뻐 보이고 싶고, 튀고 싶은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한복은 무척 매력적인 옷”이라고 말했다. “올 봄 선보일 컬렉션의 주제를 ‘블루라군’으로 정했습니다. 저희가 만든 옷으로 유토피아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인 혼란을 잠시나마 잊고 행복을 느끼고픈 바람을 담아냈습니다.”

한복 사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11년째인 황 대표는 업계에선 이미 유명 인사다. 그동안 한복산업 부흥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덕분이다. 황 대표는 한복 저변을 넓히고 한복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1년에 몇 차례씩 한복 토크쇼와 한복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한복 디자이너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위해 한복 진로 체험과 한복 클래스도 연다. 그는 이처럼 수익과는 무관한 일에 힘을 쏟는 이유에 대해 “건강한 한복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서울패션위크 트레이드 쇼에 참가했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더군요. 예복이나 코스튬(어떤 시대·지역 특유의 복장)을 위한 의상으로는 패션위크에 들어갈 수 없다는 조항 때문이었어요. 한복을 코스튬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시각이 갈리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부스를 열기는 했지만 그때 아직도 한복을 패션으로 인정하지 않는 인식이 도처에 깔려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황 대표는 ‘한복 전도사’를 자처한다. 이를 위해 ‘한복 차림의 1000가지 행동 도전’을 실천 중이다. 평소 자신이 손수 만든 생활한복을 입고 삼겹살 먹으러 가기, 벚꽃놀이 가기, 클럽 가기, 버스 타기, 장보기 등을 실행에 옮긴 후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이를 통해 매일 수천 명의 소비자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요구사항을 제품에 반영한다.

한복 저변을 넓히기 위해 지난해 6월에는 하이트진로와 손을 잡고 독특한 협업도 진행했다. 하이트진로가 내놓은 탄산주 캐릭터에 치마와 저고리를 만들어 입힌 것이다. 당시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마련된 팝업스토어(임시 매장)에는 일주일간 2500여 명의 방문객이 다녀갈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황 대표는 “하이트진로와의 만남은 우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며 “이를 통해 브랜드 홍보와 한복에 대한 인식 전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선보이는 한복은 일상에서 입는 생활복이다. 세련된 무늬가 프린트된 면이나 폴리에스테르 등으로 만들어 가벼운 세탁도 가능하다. 지난해에는 국가 공모 과제에 응모, 한국적인 감성에 기능성이 가미된 신소재 7종을 개발하기도 했다. “우리 제품은 과거 한문 선생님이나 국사 선생님이 입던 개량한복과는 전혀 달라요. 꽉 끼는 청바지나 하이힐처럼 약간 불편해도 멋스럽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게 우리의 지향점입니다.”

10년 전 평범한 대학생이던 황 대표의 인생은 우연한 계기로 전환점을 맞게 됐다. 전북대 산림자원학과에 다니던 시절, 인기 만화의 퓨전한복 의상을 제작해 코스튬 플레이를 했던 것이 한복과의 첫 인연이다. 이때 입었던 한복을 인터넷 중고장터에 내다팔기 시작하면서 사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던 2010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황 대표는 모던한 감각의 파티복 브랜드 ‘손짱디자인한복’과 한복을 모티브로 만든 캐주얼 브랜드 ‘리슬’을 내놨다. 그는 자신이 개척해온 한복 시장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경복궁이나 인사동에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한복산업이 발전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오히려 장사가 된다는 소문에 너도나도 뛰어들다 보니 중국산을 비롯해 정체불명의 제품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돈벌이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한복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명감이 있어야 궁극적으로 시장을 살리는 길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15억원의 매출을 올린 황 대표는 업계에서는 드물게 52개국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는 “배송이 가능한 모든 지역에 제품을 팔고 있는 셈”이라며 “이런 노하우를 기반으로 앞으로 B2B(기업간 거래) 사업에 진출해 매출을 더욱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30억원이다.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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