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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공화국의 가격 평준화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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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경제부 부데스크

김원배경제부 부데스크

2010년 12월 롯데마트는 5000원짜리 통큰치킨을 내놔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BBQ를 포함한 프랜차이즈 치킨업체는 “동네 치킨집 죽이는 원가 이하의 미끼 상품”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도 공격에 가세했다. 롯데마트는 일주일 만에 통큰치킨 판매를 중단했다.

당시 통큰치킨 반대에 앞장섰던 BBQ는 최근 가격 인상을 시도하다 백기 투항했다. 세무조사를 의뢰하겠다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압박이 컸다. 여기에 불매 운동 조짐까지 나타나는 등 소비자 반응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두 사건으로 일반 치킨 가격의 상한은 마리당 2만원 정도로 정해졌다. 물론 대형마트가 가격을 확 낮춘 치킨을 지속적으로 판매하는 것도 금물이다. 결과적으로 일정 범위의 ‘가격 평준화 정책’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포화상태에 이른 치킨시장엔 변화가 필요하다. 치킨업종은 퇴직자들이 생각하는 창업 1순위다. 치킨공화국이라는 말처럼 경쟁도 치열하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5년 새로 문을 연 치킨가맹점은 3980개였다. 같은해 폐점한 가맹점(기존 점포 포함)은 2793개로 전체의 10.25%에 달했다.

지금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미미한 소득 증가로 인한 소비 부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소득은 1년 전보다 0.6% 올랐지만 물가 상승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0.4% 감소했다. 실질소득 감소는 2009년 이후 7년 만이다.

가격 인상 논란이 일었을 때 BBQ는 “본사가 아닌 가맹점주에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게 사실이면 가격 인상을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 가맹점주와 직원의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선 즐겨 먹는 치킨 값이 오르는 게 달갑지 않다. 하지만 경쟁사 치킨을 먹거나 다른 음식을 선택할 수 있다. BBQ의 가격 인상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다른 업체가 저렴한 가격으로 치고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BBQ를 시작으로 치킨 값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만일 상위 업체들이 짜고 가격을 올리려 했다면 담합으로 처벌할 수 있다. 담합까지는 아니지만 시차를 두고 가격을 올리는 ‘가격 추종’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럴 땐 정부가 좋은 재료를 값싸게 공급하고 제2의 통큰치킨이 나오도록 하면 된다. 흔히 서비스업의 고부가가치화를 강조한다.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더 비싸게 받을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인건비를 쥐어짜지 말고 유통과 제조 과정의 혁신을 통한 가격파괴도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시도가 원초적으로 차단된 체제다.

아쉬운 것은 BBQ가 가격 인상을 철회하면서 이런 움직임이 담합이었는지 새로운 차별화 정책이었는지 확인할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이제 치킨업계에 남은 것은 일정 가격대에서 상대방을 죽여야 사는 ‘치킨게임’밖에는 없는 것 같다.

김원배 경제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