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랐다. 한채아(34)가 예쁜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털털한 사람인지는 몰랐다. ‘아름다움’과 ‘솔직함’, 이 두 가지는 배우 한채아의 숨길 수 없는 속성이다. 그 매력을 다 보여 주는 영화가 ‘비정규직 특수요원’이다. 한채아가 연기한 나정안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열혈 형사다. 그처럼 예쁘지만,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다. 한채아는 인터뷰 내내 말버릇처럼 “솔직히”를 반복했다. 사람 홀리는 여신 같은 포즈로 화보 촬영을 할 때만 해도 몰랐다. 그가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인지.
- ‘비정규직 특수요원’에서 형사 정안을 연기했다.
“캐릭터를 더 극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경찰청 미친 ×’이라 말하고 다닌다. 순화하자면, 다혈질 열혈 형사라고 보면 된다. 나름 지능범죄수사대 소속이다. 하하.”
- ‘한채아’ 하면 역시 ‘조선 절세 미녀’로 등장한 TV 드라마 ‘장사의 신:객주 2015’(2015~2016, KBS2)가 먼저 떠오른다. 조선 절세 미녀가 ‘경찰청 미친 ×’이라니.
“‘다중이(다중인격자)’까진 아니어도, 연기할 때는 그때그때 필요한 성격을 내 안에서 끄집어내 극대화하는 것 같다. 조선 절세 미녀…. 풉.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한데, 그런 도도한 면도 내 모습이다. 반대로 ‘비정규직 특수요원’의 자연스러운 모습도 나다.”
- 영화에서 첫 등장이 예사롭지 않다. 시나리오대로라면 이렇다. ‘(소매치기를 제압한 뒤)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줍는 정안, 흘러내리는 긴 머리, 탄력 있는 몸매, 예쁜 얼굴까지…. 앞머리 쓸어 올리자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 보고 있던 남자 승객들과 소매치기까지 심쿵.’ 혹시 이런 연기가 제일 쉬운 것 아닌가? 평소 모습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되니까.
“무슨 소리. 그런 연기가 제일 어렵다. 옆에서 보조 출연자들이 ‘와!’ ‘헉!’ 하며 입을 떡 벌리고 리액션하는데, 이거 상당히 부담스럽다. 특히 그 장면은 메이크업도 거의 안 했고,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뭐야, 예쁘지도 않은데 왜 난리야!’ 하는 관객의 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다(웃음). 카메라 앞에서 ‘예쁨’을 연기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 열혈 여자 형사 캐릭터다 보니, 액션신도 꽤 있는데.
“액션 연기는 TV 드라마에서도 해 봤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보다 현실적인 액션을 보여 주고 싶었다. 아무리 형사여도 여자가 맨주먹으로 남자들을 가볍게 때려눕히는 건 쉽지 않잖나. 정안의 액션은 힘이나 화려함이 아니라, 여자 형사로서 범인를 제압하는 노하우가 잘 드러나는 게 포인트였다.”
- 정안은 욕을 달고 산다.
“어색하게 보이기 싫어서,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다. 주변의 모든 남자 스태프가 욕 선생님이나 마찬가지였지. ‘개새×로 할까요, 씨×로 할까요?’ 이런 걸 종종 물어봤다. 하하. 원래 시나리오에는 ‘이런 수박, 씨 발라먹을 놈…’ 같은 코믹한 욕이 있었는데, 내가 빼자고 했다.”
-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욕을 하면 어떤 기분인가.
“연기하면서 감정 표현이 이렇게 잘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예를 들면 ‘이렇게’ 째려보는 거랑, ‘아, 열 받아’라고 말하는 거랑, 그냥 ‘씨×’의 차이지. 하하.”
- 사진 촬영할 때 보니 강예원과 퍽 친해 보인다. 코미디 기반의 콤비영화인 만큼 배우들의 ‘케미’가 무엇보다 중요했을 듯한데, 작정하고 가깝게 지냈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강)예원 언니도 나도 말이나 행동을 가식적으로 꾸미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솔직함이 잘 맞아서 금방 친해졌다. 촬영이 끝난 뒤에는 함께 부산 여행도 다녀오고 사우나도 했다. 요즘은 꽃꽂이도 같이한다.”
- 스크린에서는 활약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비정규직 특수요원’이 실질적인 첫 영화라 생각한다. 솔직히 ‘아부의 왕’(2012, 정승구 감독)에서는 캐릭터의 비중도 작았고, 촬영 시기가 TV 드라마와 겹쳐 영화에 모든 걸 쏟지 못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2015, 김동후 감독)도 급하게 촬영에 들어갔었다. 그렇다 보니 온전히 내 캐릭터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한 장면 한 장면 어렵게 촬영했다. 두 영화 모두 아쉬움이 크다. 그에 비해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이야기와 캐릭터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촬영에 임했다. 그래서 관객 반응이 어느 때보다 궁금하다.”
- 흥행을 갈망하나.
“간절하지. ‘여여 커플 영화’가 더 많이 나오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잘나가는 배우’에 대한 욕심보다는 더욱 다양한 영화, 다양한 캐릭터가 여성 배우에게 주어지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 물론 이 영화가 잘돼서 내가 하고 싶은 영화에 출연할 수 있으면 좋겠다.”
- 하고 싶은 영화는 무엇인가.
“‘콜롬비아나’(2011, 올리비에 메가턴 감독)처럼 여자가 주인공인 화끈한 액션영화. 타이트한 검은색 타이츠를 입고, 좁은 공간을 탈출하고, 수건으로 두목을 때려눕히고, 그러다 집에 오면 남자랑 쿨하게 사랑하고. 난 그 영화를 손뼉 치며 봤다(웃음).”
-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목받았는데, 예능 스타도 꿈꾸나.
“솔직히 예능에 출연할 때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편하지 않다. 부담도 크고. 차라리 영화처럼 완전히 나를 지우고 대본대로 연기하는 게 낫다. 그런데 예능에서는 ‘리얼’을 바라니까. 시청자 대부분이 예능 속 모습을 진짜 모습이라 생각하는데, 알겠지만 예능을 촬영할 때도 거의 대본이 있고 캐릭터가 있다. 대본대로 연기하면서도 실제 내 모습인 것처럼 포장해야 하는 게 불편하다.”
- 확실히 배우 체질인 모양이다.
“연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 쾌감이나 짜릿함 같은 게 있거든. 좋은 장면, 좋은 대사를 만나면 잘하고 싶어서 마음이 막 벅차오른다. 설레고 떨리고 욕심난다. 평소엔 하나하나에 절대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 아닌데, 연기할 때만은 다르다.”
- 배우로서 그렇게 자신을 흔든 대사나 작품이 뭐였나.
“그게 뭐였는지 알려 주면 ‘아, 그 대사를 너무 사랑했고, 내 모든 걸 바친 작품이었고…’ 이런 식으로 쓸 텐가. 생각만 해도 오글거린다. 풉.”
- 오글거리는 것, 가식적인 것은 성격상 못하는 듯하다. 어떤 배우들은 더 멋지게 자신을 포장하지 못해 안달인데.
“못 견딘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난 뭐든 솔직한 게 좋다.”
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