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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망가짐'도 완벽하게…'비정규직 특수요원' 강예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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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는 ‘일밤:진짜 사나이’(2013~2015, MBC)부터, 가깝게는 ‘언니들의 슬램덩크2’(KBS2)까지. 강예원은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해 왔다. 지난해 ‘날, 보러와요’ ‘트릭’(이창열 감독)에서 불안감에 휩싸인 얼굴을 보여 줬다면, 올해는 조금 힘을 뺀 채로 친근하면서 능청스러운 연기를 잘도 해낸다. 커버스토리 촬영 현장에서 강예원을 만났다. 털털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도, 진중하게 자기 생각을 밝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남들보다 한발 느릴지는 몰라도, 남들과 다르기에 진가를 인정받는 이들이 있다. ‘비정규직 특수요원’의 국가안보국 계약직 요원 장영실(강예원)이 바로 그렇다. 직장에서는 어리바리하고 존재감 없는 비정규직 사원이지만, 정규직을 향한 불타는 집념과 잡학다식한 ‘스펙’으로 뒤늦게 만개하는 대기만성 캐릭터다. 지난해 ‘날, 보러와요’(이철하 감독)에서 사설 정신병동에 감금된 여성 강수아를 처절하게 연기한 강예원(36). 그는 영실의 ‘웃픈’ 처지가 “남 일 같지 않더라”며 사뭇 진지하게 입을 뗐다.

사진=정경애(studio 706)

사진=정경애(studio 706)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장르적인 면에서 ‘날, 보러와요’와 꽤 온도 차가 나는 영화다. 이 작품의 어떤 부분에 끌렸나. 

“비현실적인 사건을 코믹하게 다룬 영화지만, 극의 배경만큼은 굉장히 현실적이더라.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인 영실의 처지에 깊이 공감했다. 실제로 친동생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모습을 지켜본 적 있어서, 이 영화에 더 마음이 갔다.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대변해 연기하고 싶었다. 삭막한 세상이지만, 그들이 자기 비전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영실을 어떤 캐릭터로 해석했나. 

“시나리오만 읽고는 선뜻 상상하기 어려웠다. 촬영 시작 전, 지난해 하반기 미국에 방문했었다. 그때 직접 뉴욕의 빈티지 옷 가게를 돌며, 최대한 ‘루저’처럼 보이는 어정쩡하고 촌스러운 의상과 소품을 구매했다. 영실에 대한 인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영실의 외모에 성격이 드러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제작진과 공유했더니, 작품 안에 그대로 반영해 주더라.”

유독 영실의 겉모습에 신경 쓴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일단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중요하지 않나. 영실이라는 캐릭터의 외모를 통해, 어떤 조직의 구성원으로 섞이지 못한 채 그 변두리를 맴도는 인물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연기하기에도 수월한 방법을 택한 결과다. 상황과 역할에 맞는 분장을 갖추면, 배우 역시 캐릭터에 조금 더 수월하게 몰입할 수 있으니까.”

비정규직 특수요원 / 사진=영화사 제공

비정규직 특수요원 / 사진=영화사 제공

가장 힘주어 표현하고 싶었던 부분은. 

“영실에게 있어 삶의 목표는 ‘하루 속히 정규직이 되어 삶의 안정을 되찾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직장도 남자친구도 없는 처지인 만큼,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것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고(웃음). 영실의 절실함은 극 중에서 그를 더욱 용기 있고 적극적인 여성으로 변화시킨다. 그런 디테일을 잘 표현해 내고 싶었다.”

한채아와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도, 이미 ‘절친’이 된 것 같다. 

“(한)채아가 촬영장을 늘 편안하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촬영을 함께하며 서서히 친해졌는데, 인간적으로 채아를 정말 좋아하게 됐을 무렵 감정신을 찍었다. 감정이 예민한 관객이라면 아마 ‘두 배우가 실제로도 정말 가깝구나’라는 걸 느끼게 되지 않을까.”

비정규직 특수요원 / 사진=영화사 제공

비정규직 특수요원 / 사진=영화사 제공

여자 배우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조차 없었다는 이야기인가. 

“배우로 그리고 여자로 살면서 ‘가장 모르고 살았으면 싶은 감정’이 ‘질투’인 것 같다. 살다 보면 나보다 어리고 예쁜 사람들이 계속 나올 텐데, 그들 중 누군가를 질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거든. 무엇보다 그 감정을 끌어안고 사는 자신은 얼마나 괴롭겠나. 게다가 촬영장에서는 내가 잘해야 상대 배우도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비정규직 특수요원 / 사진=영화사 제공

비정규직 특수요원 / 사진=영화사 제공

최근 방영 중인 ‘언니들의 슬램덩크2’는 걸 그룹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이 대단한데. 

“노래는 늘 내게 스트레스였는데(강예원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지만, 배우로 활동하며 성대 결절을 겪었다), ‘라라랜드’(2016, 데이미언 셔젤 감독)를 보며 ‘내 목소리를 되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대중 앞에서 다시 노래할 수 있게 해 준 ‘언니들의 슬램덩크2’는 내게 의미가 각별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촬영하는데, 그때마다 정말 설렌다. 배우 강예원이 아니라 인간 강예원의 도전을 보여 주는 것이기에.”

연기와 예능을 자유롭게 오가며 ‘여자 차태현’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헬로우 고스트’(2010, 김영탁 감독)에 함께 출연한 (차)태현 오빠가 예전부터 내게 예능에 출연해 보라고 부추겼다.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2’(2012~2013, KBS2)로 처음 예능에 출연했는데, 그때도 태현 오빠가 등산 가자면서 날 속여 촬영장에 데려갔던 거다(웃음). 소속사에서는 혹시 내가 실수라도 할까 봐 출연을 말렸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도전할 기회가 영영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냈다.”

강예원&한채아(사진=정경애 studio706)

강예원&한채아(사진=정경애 studio706)

예능에서의 이미지에 가려 배우로서 중심을 잃을까 두렵지는 않나. 

“본업인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마음은 변함없다. 다만 배우로서의 연기도 중요하지만, ‘강예원’이라는 사람으로 사는 것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신비주의 컨셉트로 꽁꽁 싸매고 있기에는 시대가 무척 달라졌다. 나 또한 본래의 모습을 숨기고 살기에는 세월이 조금씩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즐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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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은. 

“아직 출연이 결정된 것은 없다. 이제 진짜 비정규직인 셈이네(웃음). 앞으로 현실적인 연애를 다룬 작품에 출연해 봤으면 좋겠다.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임상수 감독)나 ‘연애의 목적’(2005, 한재림 감독)처럼, 슬픔·오해·집착·19금 등 연애의 다양한 부분을 건드린 영화가 좋다.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을 진득하게 연기하고 싶다.”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사진=정경애(studio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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