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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가봤습니다] 많이 크겠네요, 한국형 민간 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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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9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공장에서 직원들이 제주도소방안전본부와 계약한 수리온(8 t 상당의 중대형 헬기) 기반 소방헬기를 제작하고 있다. 올해 말 완성될 제주 소방 헬기는 기존 수리온에 비해 통통한 외형을 갖고 있다. [사진 KAI]

9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공장에서 직원들이 제주도소방안전본부와 계약한 수리온(8 t 상당의 중대형 헬기) 기반 소방헬기를 제작하고 있다. 올해 말 완성될 제주 소방 헬기는 기존 수리온에 비해 통통한 외형을 갖고 있다.[사진 KAI]

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개발사업관리본부의 김대경 소형민수헬기(LCH·Light Civil Helicopter) 팀장과 지준호 LCH 체계 종합팀장은 손가락만 한 엔진 부품 하나와 씨름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지난해 6월 상세설계검토를 마치고 올 1월 신규개발 승인이 난 LCH의 세부 사항을 조율하느라 정신이 없다. 작은 부품부터 라인 생산이 시작돼 극강의 인내심이 필요한 조율 과정이 남아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천 본사 #에어버스 헬리콥터 뼈대 들여와 #이젠 중동 부호 등 겨냥 시장 개척 #99년 통합회사 출범 후 군용기 주력 #“내년 초에 시제기 시험비행 가능”

프랑스 에어버스 헬리콥터(AH)의 베스트셀러 EC-155 ‘뼈대’(체계)를 들여와 개발하고 있다지만, 여기에 피와 살을 입히는 것은 온전히 이들의 몫이다. 전방 동체의 모양을 바꾸고 지난 15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한 항공전자 비행 시스템이 꼭 들어맞게 해야 한다. 엔진도 통합디지털 엔진으로 바꿔야 한다. 작은 오차도 치명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게 비행체다. 이들은 이 작업을 “누군가가 한번 증명한 수학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해야 하는 작업과 같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새로운 작업이란 말이다.

무게 4.5t의 소형 헬기를 구성하는 162개 요소 중 KAI가 직접 제작해야 할 품목은 25개에 달한다. 완전히 처음부터 만들어야 할 구성품도 18개나 된다. 여기에 인근 협력 기관에 주문해 들여올 제품이 29개다. 국산화 비중이 절반이 넘어 그만큼 신경 쓸 일도 많다. 한국형 소형 헬기의 핵심기술로 내세울 장점인 진동제어기 연구도 동시에 진행되고있다.그럼에도 이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김 팀장은 “아직은 눈에 보이는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큰 그림이 있으니 뿌듯하다”며 “내년 초엔 KAI의 시제기가 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험 비행이 순조로우면 2020년엔 민수 헬기로 인증을 받는다. 세계의 방송국, 중동의 부호들이 KAI 표 헬기를 타고 하늘을 가르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전투기 개발 본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했던 KAI의 회전익(回轉翼) 본부에 봄날이 찾아 왔다.

KAI의 소형민수헬기(LCH) 조감도. [조감도 KAI]

KAI의 소형민수헬기(LCH) 조감도. [조감도 KAI]

KAI의 LCH 사업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불모지인 한국의 민간 항공기 시장에 대한 도전이다. 외환위기 이후 1999년 10월 울며 겨자먹기로 3개의 회사를 통합해 만들어진 KAI는 민간 부문을 포기하고 군용기에 주력해왔다.T-50과 같은 고등훈련기나  KF-X와 같은 한국형 전투기 사업이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에어버스나 보잉과 같은 메이저들과는 다른 ‘무명의 업체’로 남았다. KAI는 정부 과제를 하느라 바빴고, 대한항공은 정비와 수리에 주력해왔다. 앞서 한국 육군 병력 수송용으로 제작된 수리온을 소방·경찰·구조용으로 쓰고 있지만 정부나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형태라 민간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하긴 한계가 있다.

현재 국내 소형 헬기는 100% AH 등 해외 메이저 업체 제품이다. 한대에 150억~200억원 가까이 하는 데, 이 수요를 KAI가 잡는다면 충분히 차세대 먹거리가 될 수 있다. KAI 김영석 경영전략팀 부장은 “중대형차(수리온)가 있으니 소형차도 있어야 한다”며 “플랫폼을 다양화 해 자생력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젠 민항기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라는 평가도 있다. 진입장벽이 워낙 높아 자체 기술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은 제품 개발에 수십년이 걸리고 한 번의 실수는 참사로 이어진다. 수리온 개발에도 25개월간 2000소티(sorti·시험비행)를 실시한 이후에야 시장에 내 놓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수정해야할 사항이 쏟아졌다. 현재 개발 중인 LCH도 품목별로 모두 검증하기까지 최소 1600 소티 이상 확보해야 초도 비행이 가능하다. 시간과 돈 노력에 비해 사업의 불확실성도 큰 편이다.

그럼에도 KAI가 민수 시장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더 이상 정부 예산에만 기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LCH 사업도 수리온에 이어질 예정이었던 소형무장헬기 (LAH·Light Armed Helicopter) 사업에서 파생됐다. 기왕에 LAH를 진행하니, 민수용도 동시에 제작해 보자는 아이디에서 시작됐다.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대형 여객기에 도전하기 전 이미 수리온의 경험이 있는 회전익 분야라 자신감도 붙은 후였다.

KAI측은 자사의 소형헬기가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에서 약 150여대, 해외에서 420여대를 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사 기관인 프로스트 앤 설리반에 따르면 2033년까지 중소형 헬기 수요는 2836대, 226억 달러 시장이다.

KAI의 한 관계자는 “개발 성공 후 양산에 들어가 성공하면 평균 40년 동안 수익으로 돌아오는 사업인데 긴 안목이 부족했다”며 “2020년부터 50인승 민간 항공기 프로젝트에 돌입하는 등 도전 과제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사천=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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